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49. 당나귀와 궁둥이

서 량 2008. 6. 9. 20:59
 'ass'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당나귀'라는 뜻이고 두 번째는 'arse'라는 비어(卑語)가 변한 말로 '궁둥이'라는 뜻. 'arse'는 혀를 꼬부려서 발음하기가 힘이 들어 'ass'로 와전돼 버린 말이다.

  일부 언어학자들은 이 두 번째 궁둥이라는 뜻도 당나귀에서 유래한 것으로 착각을 한다. 당나귀! 하면 제일 먼저 떠 오르는 연상작용이 그 거대한 엉덩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ass'와 'arse'는 엄연히 다른 말이었는데 양키들이 잠시 먼 산을 바라보는 사이에 '당나귀'가 '궁둥이'로 변한 것이다.

  이 말을 당나귀들이 들으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는가. 당나귀건 사람이건 한 어엿한 생명체를 궁둥이와 동일시 하는 것은 동물애호와 박애주의 사상 차원에서 아주 통탄할 노릇이로다.

  그러나 당나귀에서 출발한 'ass'의 가장 잘 알려진 뜻이 바보 혹은 고집쟁이라는 점 또한 당나귀들의 피치 못할 운명이다. 'asinine'은 'ass'의 형용사로서 당나귀처럼 고집이 세고 우둔하다는 뜻으로 남을 점잖게 그러나 치명적으로 모욕할 때 쓰면 효과가 적중하는 형용사다. 'stupid'보다 좀 어려운 말이어서 특히 세련미가 넘치면서 낯이 뜨거워지는 단어다.

  요사이 미국 민주당 당내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튼과 버락 오바마의 경쟁이 치열하다는 소식이다. 민주당의 심벌이 마침 또 당나귀 아닌가. 당신도 알다시피 20달러 지폐에 앞쪽에서 인상을 빡 쓰고 있는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이 1828년에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했던 당시 공화당에서는 그를 머리 나쁜 'jackass(수탕나귀)'라 놀렸다 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잭슨은 고집이 센 당나귀의 이미지를 선거에 십분 활용해서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 것이다. 게다가 당시 유명한 만화가가 민주당의 표시로 당나귀를 그려서 결국 당나귀가 민주당의 상징이 된 것이다. 'ass'의 이중의미를 피하기 위하여 민주당의 당나귀는 점잖게 'donkey'라 부른다.

 성급하고 직선적인 뉴요커들 입에 붙은 말 중에 'asshole'이라는 속어가 있다. 문자 그대로 궁둥이에 있는 구멍. 소위 교양 있는 한자어로 항문을 지칭한다.

  한 인간을 항문으로 봄으로서 그 사람이 지닌 고매한 인격을 깡그리 말살시키는 이 전격적인 속어에는 바보천치나 고집불통이라는 의미 외에도 거칠고 무례한 사람이라는 뉘앙스가 손톱 밑 가시처럼 깔려 있다.

  이를테면 맨해튼이나 부르클린에서 차를 몰 때 길 간판을 찾으려고 네거리 복판 같은 데서 잠간이라도 우물쭈물 해보라. 누군가 당신 차를 박을 듯이 스쳐 가면서 'asshole!' 하고 소리 칠 것이다. 이 말은 이미 15세기 초에 'arce-hool'로 쓰여진 이후로 예나 지금이나 양키들의 항문성 사고방식을 입증하는 강력한 본보기다. 구강성(口腔性) 우리말 욕에 '엿 먹어라'와 좋은 대조를 이루는 언어 습관이다.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에헴, 양키들의 항문에 입각한 일상 속어를 열거 해 볼까 합니다.

  거만한 사람을 'pompous ass'라 하고 째째하고 까다로운 사람은 'tight ass' 무서울 것 하나 없는 깡패를 'bad ass'라 한다. 건방지게 잘난 척 하는 사람은 'smart ass' 혹은 'wise ass' 그 반대로 머리 나쁜 사람은 'dumb ass'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는 불쌍한 사람은 'sorry ass' 궁둥이가 큰 사람을 'fat ass'라 하지. 그리고 또 있다. 남의 항문을 싹싹 핥아 주는 사람은 'ass kisser'라 한다.

  왜 이다지 영어는 항문 위주의 언어인가. 이 호랑말코 같은 양키들의 언어는.

© 서 량 2008.03.02
--뉴욕중앙일보 2008년 3월 05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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