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44. 여자와 와이프

서 량 2008. 4. 29. 14:03

한국 티비에서 2007년 연속 드라마를 총정리 하기를 올해는 '불륜'이라는 주제가 단연 압도적이라는 결론이다. 요사이는 무슨 드라마를 보던지 맨날 부부간에 한쪽이 혹은 쌍방 다 바람을 피우는 테마가 판을 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wife(아내)'와 'husband(남편)'의 어원을 조사해 봤다. 'wife'는 고대영어에서 'wif'라 했는데 '여자'라는 뜻이었다. 발음이 매우 비슷한 고대 언어 북구의 'vif'와 독일어의 'Weib'도 단순히 '여자'라는 말이었다.

 

당시 양키들 사고방식으로는 세상 모든 여자들은 자기들의 와이프였다는 이론이 너끈히 성립된다. 언제부터 'wife'가 현대의 '아내(妻)'라는 뜻으로 자리잡았는지 분명치 않지만 아마도 다부다처제(多父多妻制)의 풍습이 일부일처제로 변천했던 무렵으로 추측된다. 이것은 다신교가 일신교로 바뀌어지는 인류의 필연적인 진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woman'도 'wifman(여자사람)'에서 유래된 말이다. 직역하면 '와이프 사람'(?). 'wifman'이 'wimman'으로 바꿨다가 1250년 경에 현대영어의 'woman'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러니까 어원학적 차원에서 'woman'은 모든 남자들의 와이프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바로 <여자=모든 남자의 아내>라는 서구적 등식이 가능하다.

 

'man'은 고대영어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다가 기원전 1세기에 비로소 '남자'라는 의미가 생겨났다. 아직도 'man'은 '사람'이라는 말로 자주 쓰인다. -- 'Time and tide wait for no man'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당신도 알다시피 세월은 남녀를 불문하는 유니섹스의 세월인 것을.

 

그렇다면 'wife'에 상응하는 'husband'는 무슨 의미에서 왔는가? 'husband'의 'hus'는 고대영어로 '집(house)'이라는 뜻. 'band'는 현대영어의 'bound', 즉 '묶여있다'는 의미. 결국 '허즈번드'는 문자 그대로 '집에 묶여있는 사람'을 뜻한다. 동물을 사냥하면서 방랑하는 벌거숭이 사내들이 농경시대에 슬금슬금 집에 안착을 시작한 사실을 절감할 수 있는 말이다. 농경시대야말로 인류 역사상 일부일처제의 이정표였다.

 

이 역사적인 사실을 입증하는 말로 'husband' 끝에 'ry'를 붙인 'husbandry'는 '농업'이라는 의미다. 아마도 이 시점에서 총명한 당신은 경미한 혼란을 느낄지 모르겠다. 서구적인 의미에서 집에 붙어 있는 '집사람'이란 아내란 말인가 남편인가? 해답은 자명하다. 양키들의 '안사람'은 우리들의 '바깥양반'이었던 것이다.

 

사르트르와 평생을 계약결혼을 하고 지낸 불란서의 철학자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그의 저서 <제 2의 성>(1949년 출간)에서 일찌기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라고 선언한 것을 당신은 혹시 기억할지 모른다.

 

그녀는 18살이란 어린 나이로 세 살 위 사르트르와 어깨를 나란히 솔본느 대학 철학과 교수가 된 그야말로 시대의 앞길을 내다보는 뛰어난 여자였다. 그런데 그녀가 애써 실존철학과 페미니즘을 접목시키려던 그 시절부터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즉, 우리가 퇴행하고 있다는 사실, 인류의 문명이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진실의 대두였다. 남성의 압제에 대한 여성의 반발은 퇴행이라기보다는 인류의 진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귀결이었다.

 

우리집이나 옆집 할 것 없이 한국 티비 연속 드라마 속에서 일부일처제의 격식을 벗어나서 다부다처제 쪽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2007년 연말이다. 이것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세모이기도 하다.


© 서 량 2007.12.26
--뉴욕중앙일보 2007년 12월 27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