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가 지휘봉을 들고 무대에 뚜벅뚜벅 걸어 나오자 날렵한 손가락들이 청중을 충동질하는 장면이 툭 끊어진다 강변을 못살게 구는 겨울바람 소리도 졸지에 사라진다 딱딱딱딱!
앞가슴이 깊이 파인 연주복을 입은 덩치가 작은 여자가 플루트 독주를 한다 여자 머리와 어깨가 심하게 흔들린다 겨울강물처럼 흐르는 오케스트라를 일부러 무시하고 플루트 소리에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 여자 얼굴이 크게 확대되면서 배경으로 희미한 들판이며 실개천이 보인다 나는 여자 얼굴에 내 시선을 못박는다 끝내 소리로만 남는 여자 얼굴
눈 시린 플루트 소리가 겨울구름처럼 손에 잡힌다 내 손바닥을 간질이는 플루트 소리 비단결 음정 하나하나가 올챙이들이 양지쪽을 향하여 재빠르게 헤엄치는 동작으로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 서 량 2005.02.24
-- 세 번째 시집 <푸른 절벽>(도서출판 황금알, 200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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