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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어머니 교향곡 2악장 - 땀방울이 앞을 가리는

서 량 2008. 4. 12. 15:56

 

어머니 교향곡 2악장 - 땀방울이 앞을 가리는

 

어머님이 달을 그윽하게 바라보시는 것을

나는 상상하지 못한다

어머님은 항상 대낮 한 복판에서

울렁이는 어릴 적 기억 속으로 뛰어 드신다

 

목욕탕 행길 맞은 편 먼 옛날

철사를 돌돌 감아 판잣대문 고리에 끼고

속절없는 삶을 살던 우리 여린 시절에

어머님은 '청실홍실' 연속방송극 말고

다른 찌릿한 낭만이 없으셨다

 

목욕탕 앞에서는 늘

구수한 빨래 냄새가 났다

 

땀을 뻘뻘 흘리는 보름달을 본다

청실홍실이 실고추처럼 얼키는 달무리에서

한여름 어머님의 런닝사쓰 뿌듯한

젖빛 체온이 묻어 온다

 

이제야 나도 달을 그윽하게 바라본다

눈물 흘리는 보름달을 만지고 싶어라

마구 만지고 싶어라

 

© 서 량 2001.03.10
-- 첫 번째 시집 <맨하탄 유랑극단>(문학사상사, 200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