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43. 크리스마스 캐롤

서 량 2008. 4. 24. 22:00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있다. 걱정을 잘하는 기질을 타고 난 사람에게 잔 신경 쓸 것 없이 인생을 대범하게 사는 것이 좋다고 비양대는 말이다. 사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걱정한다는 것 하나 만으로 해결이 되는 일은 거의 없으리라. ’Care killed the cat(걱정이 고양이를 죽였다.)’라는 영어속담이 명시하듯 쓸데 없는 걱정은 몸에 해로운 법.

  ’care’와 ‘charm(매력)’과 크리스마스 캐롤의 ‘carol’이 같은 뿌리에서 온 말이라고 하면 당신은 얼른 수긍이 가겠는가.

  고대영어에서 한 때 ‘care’는 ‘karo’ 또는 ‘chara’라 했는데 이 말은 그 뜻 중에 ‘시끄러운 소리’라는 뜻도 있었다. 11세기 이전의 고대 고지(高地) 독일어로 ‘chara’는 ‘통곡하다’, 소위 우리말로 ‘꺼이꺼이 울다’였다. 남의 장례식에 고용되어 노래하듯 정성껏 울어주는 곡비(哭婢)의 울음소리를 당신은 유심히 들은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옛날 서구인들은 걱정이 있으면 말이 많아지고 시끄러운 소리를 냈고 막판에는 울며불며 노래라도 했던 모양이다. ‘chorus(합창)’는 라틴어로 ‘춤추다’라는 뜻. 오래 전 이태리 사람들은 무성영화에서처럼 소리 없이 춤만 덩실덩실 추지 않고 요란하게 노래하며 몸을 휘둘렀던 모양이다.

  ‘choir(성가대)’도 ‘chorus’와 같은 맥락이다. 근육신경이상 때문에 본의 아니게 자꾸 춤을 추는 ‘무도병(chorea)’도 같은 어원. ‘carol’은 14세기 까지 그리스 전통악기 피리 반주에 맞춰 노래하며 추는 춤을 뜻했는데 16세기 들어서면서 ‘크리스마스 때 부르는 찬송가’라는 뜻이 됐다.

  ‘charm’ 또한 14세기 이전 고대 불어로 ‘주문을 외다’는 의미였고 라틴어의 ‘carmen(노래하다)’에서 유래했다. 라틴계 여자 이름 중에 허구 많은 칼멘(Carmen)은 바로 ‘노래하는 여자’라는 뜻이다.

  어원학적 차원에서 이만하면  ‘걱정 = 시끄러운 소리 = 노래 = 춤추기 = 합창 = 성가대 = 캐롤’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신라시대의 처용도 자기 아내의 간통현장을 보고 춤추며 노래하지 않았던가. 시끄럽게 소리치며 서럽게 통곡하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래의 근원은 걱정과 슬픔에 있었다. 우리 대중가요의 시초를 장식했던 <타향살이>나 <눈물 젖은 두만강>도 그랬듯이. 시름에 잠겨 우리 민요 정선 아리랑 같은 구슬픈 가락으로 노래를 하던 고대의 양키들을 상상해 보라.

  ’care’와 ‘charm’, 근심과 매력이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이라니! 이건 절대 억지가 아니다.한 인간이 걱정스러워 보일 때 그 잔뜩 긴장한 모습이 어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마치도 우리말에 예쁘다는 말의 본래 뜻이 가여워 보인다는 데서 온 것처럼...어떤가. 좀 혼동이 오는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생각해 보면 은근히 수긍이 가지 않는가.

  양키여자가 수심에 잠겼을 때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한국여인이 가엽고 불쌍할 때 예뻐 보이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인지상정의 이치다.그만큼 동서양 고대인들은 인간이 겪는 삶의 아픔을 매력적이고 예쁘게 보고 두둔하고 감싸주었던 것이다.이런 속성은 양키나 우리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깨달음이 오늘 우리를 기쁘게 한다. 동서양의 공감대를 발견한 위대한 희열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올 것이다. 이미 TV에서 거리의 상점에서도 크리스마스 캐롤이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있다. 그날은 또 한해가 넘어가는 걱정스러움과 합창과 춤추는 성가대(?)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우리 어린애들에게 배달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의 매력이 온통 뒤범벅이 될 것이다.


© 서 량 2007.12.11

--뉴욕중앙일보 2007년 12월 12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