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七面鳥)! 하면 어딘지 이국적이고 로맨틱하게 귀에 들어온다. 새는 새인데 일곱 개의 면이 있다니. 프리즘 렌즈가 뿜어내는 오색찬란한 빛의 조화가 눈에 선하게 떠 오르지 않는가.
1541년과 1555년 사이에 아프리카의 뉴기니(New Guinea)에 서식하던 야생조(野生鳥) ‘turkey’를 폴투갈 사람들이 미국으로 대량 수출했다. 아세아의 실크로드(silk road)가 유명해졌듯이 그들이 터키를 몰고 가던 땅이름이 나중에 터키라는 국가 이름으로 변했다 한다.
당신도 한 번 생각해 봐요. 어찌하다 나라 이름이 날짐승 이름이 됐는가. 우리나라 이름이 ‘꿩’이나 ‘닭’이라는 상상을 한 번 해 보세요. 월드컵 축구경기 응원할 때 저 귀에 익은 ‘대~한민국’ 대신에 ‘꿩~민국’ 혹은 ‘닭~민국’이라 소리쳐야 되지 않느냐 말이다.
1927년도부터 터키는 허리우드 영화계의 슬랭으로 ‘흥행성적이 좋지 않고 질이 낮은 영화작품’을 뜻했다. 그리고 1950년 초반 경부터 ‘a stupid, slow, inept, or otherwise worthless person (둔하고 느리고 얼이 빠져있고 별로 쓸모없는 사람)’을 지칭하는 슬랭이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칠면조의 둔하고 느리고 겁이 많은 기질을 그대로 사람에게 적용시킨 결과다. 주지하는 바, 인간은 동서양 할 것 없이 실패한 영화보다는 자기네들을 서로 비웃고 깔보는 쾌감이 더 월등한 것 같다. 그래서 주간지나 싸구려 저널리즘이 잘 존속하는 우리의 문명이 아니던가.
그러니까 ‘turkey’는 우리말 슬랭의 '닭대가리'에 해당한다. 양키나 우리들이나 그저 만만한 게 홍어 뭣이라더니, 눈앞에 자양분 많은 조류(鳥類)만 보이면 얕잡아 보고 경멸하다가 끝내는 입맛을 짝짝 다시면서 잡아먹는 우리의 습속을 어찌하겠는가 말이지. 자고로 날짐승들은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게 아니다. 인류역사상 영계백숙과 터키 샌드위치라는 미명하게 무수하게 죽어갔고 지금도 끊임없이 죽어가는 닭과 칠면조들이여, 부디 영면하라.
‘cold turkey’라는 말이 1920년도부터 쓰이기 시작했지. 그 의미는 마약이나 나쁜 습관 따위를 하루 아침에 갑자기 확 끊는 것이다. 아편쟁이들이 어느날 아편이 딱 떨어졌을 때 온몸에 닭살(터키 살)이 돋으면서 찬 소름이 쪽쪽 끼치는 상태를 묘사하면서 쓰이기 시작한 말이다. -- I quit smoking cold turkey. - 나는 담배를 그냥 확 끊었어.
하나만 더! 'talk turkey' 라는 숙어는 '솔직하게 터 놓고 얘기하다.'라는 의미로서 19세기 초반부터 사용된 아주 오래된 슬랭이다. Let's talk turkey. - 우리 터 놓고 말합시다. 이게 뭐냐 하면 아마도 칠면조들의 성격이 솔직한 모양이지.
천리타향 이역만리 미국생활 34년째 또 한번의 추수감사절을 맞는다. 인류가 닭과 터기가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올해에도 또 터키를 먹어야지. 내가 미국에 사는 한 양키들의 관습을 따라야 해.
아무리 고추장과 마늘을 듬뿍 넣어 요리를 해도 역겨운 냄새가 조금은 코끝에 남아도는 그런 칠면조 찜을 먹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50년 정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그 옛날 청교도 양키들이 쏘아대던 총에 기꺼이 ‘gobble! gobble! (끼룩! 끼룩!)’ 하며 소리치며 허허벌판에 쓰러지던 칠면조들의 오색찬란한 벼슬과 그때 그 가을 바람에 흩날리던 깃털을 눈앞에 떠올리며.
© 서 량 2007.11.13
--뉴욕중앙일보 2007년 11월 14일에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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