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얘기

|환자얘기| 하바드 졸업생

서 량 2008. 1. 29. 09:14

 

오늘 이상한 놈을 한 놈 봤지.

나이가 나보다 5살 아래 허우대 멀쩡하고 얼굴 잘 생긴 백인 남자가

부랑자수용소에서 정신감정을 해 달라고 내게 의뢰가 왔다.

 

이놈이 그 유명한 하바드 대학 비지네스 스쿨을 나온 놈이야.

10년쯤 전에 맨해튼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 무슨 한 섹션(section)의

편집장을 하던 놈.

 

어느날 지 상관하고 말싸움이 붙은 다음에 홧김에 그 다음날 사표를 내고

일을 고만 둔 너무나너무나 성미가 급한 놈. 나 보다 엄청 더 급해.

 

그 일이 있은 후 한달 후에 그놈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죽고, 그 후로는

아무리아무리 이력서를 내고 인터뷰를 해도 계속 이놈을 고용하겠다는 회사가 없는 거야.

그래서 여차여차 이 놈은 10년이 지나는 사이에 미국 사회복지제도에 의해서

요새는 완전 빈민자 취급을 받는다. 얼굴은 배추 속살처럼 허옇고 귀공자 티가 나는 놈.

 

그는 지난 몇 년을 싸구려 모텔에서 살다가 돈이 떨어지니까 숙박료도 못내고

결국 정신과 병원에 열흘인지 입원했가다 "이놈이 정말 미친놈인지 아닌지 감정해 주십시오"

하는 의뢰서가 내게 온 거야. 내 말 오해하지 마. 내가 잘나서 내게 온게 아니라

내 직책이 그래서 내게 온 거야. 좀 재미있는 직책. 당신이 재미 없다 해도 나는 재미있어.

 

나와 크게 다르지 않게 생각이 앞뒤 없이 번쩍번쩍 튀는 놈.

지금 이 놈을 미쳤다고 하나 정상이라고 해야 하나 하면서 나 무지하게 고민 중이야.

당신은 이런 내 고민을 몰라도 좋아. 이런 고민을 알아서 뭐에 써먹지.

 

© 서 량 2008.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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