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자신을 알코홀릭이라고 지칭하는 40대 중반 백인여자가
가슴이 깊이 파인 옷을 입고 내 책상 앞에 앉은 거야. 화장도
알맞게 하고 몸매가 30대 초반으로 뵈면서 자신의 여성적인 면에
자신감이 넘치는 자세를 취하는 거야. 이 여자가
내게 온 이유는 경범죄 단속반에서 정신감정이 필요하다고 해서였어.
두 달 전에 밤길에서 사복경찰에게 술이 취해서 거리의 여자로 군림하며
수작을 걸은 거야. 사복경찰이 사정을 하다시피 내가 경찰이니까
그런 행동 하지 말라 했더니, 야 이놈아 니가 공무원이라면
특별히 내 몸값을 반값으로 할인해 주겠다! 했다가 덜컥 체포 당한 거야.
멀리서 봐도 요염해 뵈는 이 여자는 카나다 토론토 근교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최우수생으로 졸업한지 몇달 후에 콧수염이 근사한
핌프, 우리말로 양아치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 왔대. 그것도 직방으로 맨해튼으로.
그래서 얘는 18살 부터 27살까지 9년 동안을 맨해튼에서 소문난
창녀로 원기왕성하게 활동하면서 돈을 왕창 벌었대. 물론 그 재산을
송두리채 기둥서방이 가로챘지만.
정신감정을 거진 한 시간동안 하면서 결국 내가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지고 말았어. --- "당신은 머리가 나쁜 사람 같지도 않은데 왜 상대가
자기는 경찰이라고 신분을 밝히면서 도망갈 구멍을 마련했는데도
그걸 마다하고 그렇게 굳이 바보천치 같은 발언을 했습니까?" ---
그랬더니 그녀는 왕방울만한 눈을 서너 번 깜박이더니 하는 말이.
--- "내 인생의 황금기 맨해튼 생활 9년 동안 한 백 번 정도
풍기단속반에게 체포당했지요. 그 당시 내 소원이 경찰을 꼬셔 보는 거였어요.
근데 지금까지 기회가 없다가 드디어 기회가 왔길래 과연 내 여성적인 매력이
어느 정도인가 한 번 테스트 해 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 하는 거야.
순간적으로 나는 그 여자의 도전의식에 모종의 경의를 표하고 싶었지.
당신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이상한 생각을 하지 말아 줘요. 이렇게
자기 마음을 솔직담백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참 드물다! 하는 경악심에서
그 생기발랄한 40대 중반 백인여자를 인간적으로 보고 싶었다는 얘기야.
© 서 량 200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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