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는 ‘서다’는 뜻으로 앉았다가 벌떡 일어서는 기립동작을 뜻한다. 반면에 ‘서다’는 움직이다가 멈춰서는 동작정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이중의미는 우리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냥 서 있지만 말고 어떻게 좀 해 보세요!(Don’t just stand there, do something!)’ 할 때 ‘stand’는 가만이 서있는 부동자세를 지적하는 말. 양키건 한국 사람이건 일어서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냥 서 있기만 한다고 해서 장땡이 아니다.
장땡 얘기가 나왔으니 우리 화투놀이에서 ‘섰다’를 할 때 선다는 것은 상대에게 응수하고 도전한다는 의미가 되겠다.
선다는 것은 생명현상의 발로이면서 인간을 두발로 서게 한 동물 진화단계의 최첨단 동작이었다. 사내들끼리 하는 말로 섰다는 말은 음경이 발기했다는 뜻으로 생물학적 차원에서 종족보존 본능의 첩경이다.
‘understand(이해하다)’는 다른 사람이나 사물 ‘밑에(under) 선다(stand)’는 뜻에서 온 것 같아서 좀 재미있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 밑에 포지션을 잡아야 한다. 저자세로.
이것은 마치도 우리말에 ‘안다’는 말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안’으로 들어가야 된다는 뜻에서 온 것만큼이나 의미심장하다. 이를테면 양키들은 무엇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밑으로 들어가고 우리들은 그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양키들은 사물의 밑을 파 헤치기 때문에 그 기질이 분석적인 반면에 우리들은 안을 들어다 보기 때문에 통찰력이 있고 내성적일 뿐이다. 결국 인간이 진리를 이해하는 방법은 위나 거죽보다는 밑바닥과 속이 중요한 것이다.
‘withstand’를 ‘함께 서다’라고 쉽게 해석하고 싶겠지. 인간이란 역경에 접했을 때 혼자 보다는 다른 사람과 함께 서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당신은 눈을 초롱초롱하게 반짝이면서 선언하고 싶겠지. 그러나 그렇지 않다.
8세기경까지 고대영어에서 ‘with’는 ‘against’라는 뜻이었다. 워낙 양키들의 ‘함께’라는 의식 상태는 서로 거스르고 거역하는 ‘against’의 마음가짐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마치도 사이가 좋지 않은 룸메이트나 부부처럼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밤낮을 같이 했다는 역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렇듯 ‘with’가 양키들의 의식에서 기구한 변천을 거쳐 현대어의 ‘함께’ 라는 뜻이 되기 까지는 십 여세기가 소요됐던 것이다. 아직도 ‘with’가 ‘against’라는 뜻으로 ‘withstand(버티다; 대항하다)’라는 말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동지와 연인들 사이에 흔히 쓰이는 ‘I am with you(나는 당신 편이야)’라는 숙어는 사실은 고대영어로는 ‘I am against you(나는 당신을 반대해)’라는 뜻이었다. 요새 유행하는 시쳇말로 ‘맞장뜨다’이다. 이것은 얼마나 끔찍하게 역설적인 발언인가.
우리말에도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라는 이상한 속담이 있다. 인간의 행동과 심리는 늘 이렇게 동서양 할 것 없이 역설적이기만 하다. 우리의 시누이들은 겉으로는 말리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시어미의 부화를 더욱 더 돋구었던 것이다.
비슷한 의미에서 양키들은 여자가 남자를 유혹할 때 호락호락하게 나오지 않고 남자를 자꾸 골탕을 먹여가면서 남자로 하여금 자기를 더욱더 뜨겁게 추구하게 하는 수법을 ‘play hard to get(잡기 어렵게 하다)’라고 한다. 이 또한 아주 역설적인 남녀의 심리상태다.
알고 보면 우리도 양키들도 상호간에 늘 다투면서 함께 살았다. 인간의 공존은 평화보다는 끝없는 긴장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이 길고 지루한 인류의 진화과정을 통하여 ‘거슬러 서기’를 ‘함께 서기’로 바꾸어 놓은 고대 양키들의 후예들과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금단 없는 대화를 나눌 것이다.
© 서 량 2007.09.03
-- 뉴욕중앙일보 2007년 9월 5일 서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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