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1. 연삭삭하게 사랑해 줘

서 량 2007. 11. 26. 07:28

 엘비스 프레슬리의 1956년 히트곡 'Love me tender'의 시작 부분을  기억하는가.  

 

 Love me tender / Love me sweet / Never let me go (연하게 사랑해 줘 / 달콤하게 사랑해 줘 / 절대로 나를 떠나게 하지 말아 줘)

 

가사 첫마디를 '연하게' 사랑해 달라고 번역한 것이 귀에 거슬린다. 차라리 '진하게' 사랑해 달라면 앞뒤 문맥이 자연스러운데 왜 그렇게 시시한 사랑을 추구할까.

 

 11세기 경 ‘tender'의 전신인 고대 불어의 'tendre'는 '상처 받기 쉽다'는 뜻이었다.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상처 받고 아프기 쉬운 법이다. 그 후 14세기에 친절하다거나 상냥하다는 의미가 첨가됐고 고기를 연하게 한다는 뜻의 'tenderize'는 18세기 중엽에 생겼다. 딱딱한 살코기를 연하게 만드는 파파야 열매에서 추출된 효소를 미국에서 'tenderizer'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 1958년이다.

 

 의학용어로 'tender'는 압통, 즉 누르면 아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tenderness'는 환부를 건드렸을 때 느껴지는 통증으로 그냥 내버려 둬도 싱겁게 지속되는 'pain'보다 훨씬 더 민감한 아픔인 것이다. 그 점을 감안해서  'Love me tender'를 '아프게 사랑해 줘'로 옮겼더니 이번에는 자학적이고 육감적인 뉘앙스가 짙어진다. 이쯤해서 'tender'에 해당되는 적절한 우리말은 없다는 선언을 해야겠다. 부드러운 것은 아픈 것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의미를 한 마디로 뭉뚱그린 단어가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

 

 비슷한 맥락의 모순을 내포한 영어단어가 또 있다. 섬세하다는 뜻이면서 신경이 과민하다는 말도 되는 'sensitive'가 그렇고, 우아하면서도 허약하다는 뉘앙스를 지울 수 없는 'delicate' 또한 그렇다.

 

 병아리보다 조금 큰 어린 닭을 '영계'라고 한다. 영계는 한자의 '연할 연'자와 '닭 계'자 합쳐진 연계(軟鷄: 연한 닭)가 발음이 변한 말이면서 속어로 '나이가 어린 이성'을 뜻한다. 젊음이란 걸핏하면 상처 받기 쉬운 연약(軟弱)하고 불안정한 상태인 것이다.

 

 사람의 성품이 부드럽고 사근사근한 것을 '연삽하다' 혹은 '연삭삭하다'고 일컫는다. 사람이 연(軟)하고 삭삭하다는 뜻이리라. 야후나 다움 사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네이버와 엠파스 국어사전에 뚜렷이 실려 있는 말이다. 이 표현은 'tender'가 지닌 나약성이나 병약함이 느껴지지 않고 마냥 부드럽게만 들린다. 그래서 이번에는 'Love me tender'를 '연삭삭하게 사랑해 줘' 혹은 '연삽하게 사랑해 줘'로 번역했더니 싱겁기가 짝이 없다.

 

 15세기 중반에 세종대왕이 천명한 <훈민정음>에 '내 이를 위하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물여�짜를 맹가노니' (현대어: 내 이를 위하여 어여삐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하는 부분을 당신은 기억하는가. 이때 '어여삐'는 '가엽게(불쌍하게)'라는 뜻이라고 역설하던 국어선생님이 생각나는가. 우악스럽고 협박적인 대상보다는 가엽고 불쌍한 상대가 '예뻐' 보이는 인간의 심리가 당연지사로 느껴지지 않는가.

 

 쉐익스피어의 <햄릿> 1막 2절에 'Frailty, thy name is woman.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로다)' 하는 대사가 나온다. 꽃도 여자도 남자도 인간도 나뭇잎도 다람쥐도 민들레도 쨍그랑 깨지는 포도주잔도 한갓 연약한 실존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와 우주를 유유히 휘감는 시공도 훅! 하면 금방 꺼지는 촛불처럼 일순간에 사라지는 '어여쁜' 존재인 것을.

 

 오늘도 우리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아픔으로 사랑을 노래한다. '연삭삭하게 사랑해 줘' 하며 부들부들 흐느끼는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 서 량 2007.06.24
-- 뉴욕중앙일보 2007년 6월 27일 서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