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29. 지저분한 미사

서 량 2007. 10. 27. 06:13

누구에게 시비를 걸거나 함부로 나올 때 'mess around with someone'이라는 숙어가 있다. 이 구어체의 처음 사용 시기가 1950년대로 문헌상에 나와 있고 한 1970년경부터는 아예 'around'를 생략하고 'mess with someone'으로도 쓰인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양키가 'You wanna mess with me, huh?' 하면서 언성을 높인다면 당신은 정신적이건 육체적이건 평정을 유지할 생각은 일단 포기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 만큼 이 'mess with'라는 표현에는 깡패 같고 조잡한 정서가 깔려 있다. 또 이 말에는 남녀의 정분이 갈 데까지 갔다는 뜻도 있다. 예컨대 'My goodness, you've been messing around with him!' 하면 '어머, 너 그 남자하고 저지레하는구나!'라는 뜻이다. 

 

'mess'는 뒤죽박죽이라는 뜻이면서 음식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고대불어의 'mes(음식)'에서 유래한 단어다. 형용사로서 'messy'는 지저분하다는 뜻으로 19세기 중엽부터 쓰이기 시작했는데 접시에 음식이 너절하게 흩어져 있는 장면을 생각하면 금방 이해가 가는 말이다.

 

한국식으로 말해서 사람과 사람이 한 솥 밥을 먹어 버릇하면 서로 간에 시비도 붙고 감정이 뒤섞이고 행동을 함부로 하게 되고 이성간에는 연정도 생기는 법. 당신도 익히 알다시피 남녀의 사랑은 늘 점심이건 저녁이건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을 그 시발점(始發点)으로 삼지 않는가 말이다.

 

'mate'는 동료, 짝, 배우자라는 명사이면서 동사로는 '교미하다'라는 뜻도 있는데 육식을 하는 우리들이 좋아하는 고기(meat)와 말 뿌리가 같다. 'meat'는 본래 14세기 전 까지는 일반적인 '음식'이라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서 'mess; mate; meat‘는 하나 같이 '먹을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배우자는 서로 음식을 같이 먹어야 어원학적으로 진정한 배우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mess'와 아주 비슷한 발음의 'Mass'를 우리말로 미사, 혹은 미사성제(聖祭)로 번역하는데 라틴어의 'missa'를 소리 그대로 옮겨 놓은 말이다. 'missa'의 4세기경 고대라틴어의 'mittere'에서 유래된 단어로 '사람을 보낸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훗날 'mission(특수임무)' 'missionary(선교사)' 'messenger(메신저)' 같은 말들도 탄생시켰다.

 

'mass' 혹은 'missa'는 예식이나 축제라는 뜻도 있다. 'Christmas'는 'Christ'와 'mass'를 합친 말로서 예수를 위한 축제와 잔치를 뜻한다. 우리의 전통적인 제사도 그렇지만 기독교의 원조 가톨릭 예식인 미사에서도 성체(聖體)를 신도들이 함께 먹는 행위의 중요성을 도저히 빼 놓을 수 없다. 예수 자신이 성찬용 빵을 자기의 살로 알고 포도주를 자기 피로 알라고 종용하지 않았던가.

 

더욱 더 흥미로운 것은 사람을 보낸다는 말과 음식과 예식이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귀중한 사람을 보낼 때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잘 먹여서 보내는 것이 인지상정이리라. 그래서 예수의 최후의 만찬이 그토록 콧날이 시큰해지는 역사의 장이 아니었던가.

 

아! 혼돈이 앞을 가리는도다. 깡패들 간의 시비곡절과 식사를 같이 하면서 시작되는 남녀의 사랑과 맛있는 고기와 성찬의식과 사람 보내기와 특수임무와 선교사라는 개념들이 하나같이 음식과 뒤범벅이 되어 있는 양키들의 의식세계를 어찌할꼬. 우리가 서식하는 동물왕국에서 서로의 공격성이나 연애감정이나 종교적 감성이 하나같이 음식과 먹는 행위와 지저분하다는 개념과 직결 돼 있는 현실을.

 


© 서 량 2007.05.28
-- 뉴욕중앙일보 2007년 5월 30일 서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