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0. 아제아제 바라아제

서 량 2007. 11. 3. 06:21

  미쳤다는 말로 양키들이 15세기 말부터 쓰기 시작한 단어는 'crazy'다.  'crazy'는 고대 불어의 'krasa'에서 유래했는데 산산조각으로 망가졌다는 뜻. 사람 마음이 쨍그랑! 깨지면 미친다는 단순한 이론이다. 유리잔이 깨지면 그 유리잔은 더 이상 쓸모가 없는 '미친 유리잔'이 될 것이다.

 

 '미치다'의 뜻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행동이 정상에서 벗어나다 (미쳐서 정신병원에 입원하다) 2. 무엇에 열중하다 (골프에 미치다) 3. 어떤 상태에 도달하다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이중에서 우리의 관심을 제일 끄는 것은 3번이다. 미쳤다는 것은 서구적 견해로 마음이 파손됐다는 뜻이지만 우리말로는 어떤 경지에 도달했다는 의미다. 참선을 하다가 불현듯 '각(覺)'하여 한 인간의 심성이 어떤 다른 차원에 이르는 경우가 그 좋은 예다.

 

 '깨달을 각(覺)'에는 기존지식을 깬다는 의미가 있다. 깨달음은 무지나 고정관념의 파괴를 전제로 한다. 옛날 양키들은 공격적인 행동으로 사회규범을 깨뜨리는 순간 광인(狂人) 취급을 받았고 심심산천에서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을 닦다가 인식의 고정관념을 초월한 우리의 조상들은 도인(道人)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바보와 천재처럼 광인과 도인은 서로 일맥상통한다.

 

 혹시 1989년에 제작된 <아제아제 바라아제> 라는 영화를 보았는가.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한 비구니의 비극적인 일생을 그린 한국영화를. 당신은 딱히 불교신자가 아니라도 그 영화제목이 반야심경(般若心經)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주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불교의 ‘아제아제’는 기독교의 '아멘'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어휘다.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해석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1. 신라시대의 대승 원측(園測: 613~696)은 '가자, 가자. 피안으로 가자.'로 해석했다. 2. 현대의 부처로 추앙받는 달라이 라마 (Dalai Lama)는 '간다, 간다. 피안으로 간다.'로 해설한다. 3. 영어 Wikipedia 백과사전에는 'Gone, gone. Gone beyond.'(갔다, 갔다. 피안으로 갔다.)로 풀이하고 있다. 즉, 원측은 청유형(請誘形)으로, 달라이 라마는 현재형으로, 그리고 최첨단의 백과사전은 현재완료형이다. 이 신비한 주문의 시제(時制)는 이렇게 시공을 초월한다.

 

 이윽고 당신은 눈을 깜박이며 질문할 것이다. - "<오 대니 보이>의 우리말 가사에서도 '아 목동의 피리소리들은 / 산골짝마다 울려 나오고 / 여름은 가고 꽃은 떨어지니 / 너도 가고 또 나도 가야지'  하지 않나요? 반야심경에서도 누가 자꾸 어디를 간다고 하네요. 오래전 로마의 어느 근교에서 베드로가 예수를 만나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쿼 바디스: Quo Vadis?)' 했을 때도 그랬지만 우리는 왜 그렇게 서로의 행선지를 빅딜로 삼나요?” 
       
 이 질문의 정답은 없다. 그 대신 흑인영가 하나가 떠오른다. 어릴 적 멋모르고 부르던 스티븐 포스터(Stephen Foster)의 <올드 블랙 조>의 시작부분이다.
 
 Gone are the days when my heart was young and gay.

 Gone are my friends from the cotton fields away.

 Gone from the earth to a better land I know.

 -- 내 마음 젊고 즐거웠던 시절은 가고 없어요.

 내 친구들이 목화밭에서 떠나가고 없어요.

 이 땅에서 내가 아는 더 좋은 세상으로 가고 없어요. --

 

 반야심경에서나 대니 보이도 예수도 늙은 흑인 조도 나도 당신도 과연 지금쯤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서 량 2007.06.11
-- 뉴욕중앙일보 2007년 6월 13일 서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