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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한국 티비 보기

서 량 2007. 11. 2. 11:20

요 얼마 전부터 케이블에 한국 티비를 네 채널에서 볼 수 있게 됐지.

여태 공영방송 한 채널에서 하루에 두 시간 하는 것만 보는둥 마는둥 하다가

기왕에 티비 볼 시간이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갑자기 여러 채널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구. 별 욕심도 다 생기지.

 

저쪽 패밀리룸에 한국 티비를 크게 틀어 놓고 이쪽 서재에서 할일을 하면

연속 드라마에서 남녀가 연애하는 초창기에 히히덕거리는 소리며

삼각관계 연적들끼리 서로 큰 소리로 싸우는 소리, 혹은

회사에서 사원들이 일은 안하고 서로 잡담하는 소리며

머리에 별의 별 보석을 크리스마스추리처럼 더덕더덕 붙인

궁정의 높은 여자들이 서슬이 시퍼렇게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요.

 

웬놈의 연속드라마는 그렇게 많은지, 하나도 제대로

스토리 파악을 못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저녁 먹으면서

서로 다른 드라마 서너 편을 섞어서 혼동하기도 하는데, 하여간

밤낮 아들인지 딸인지가 부모한테 자기가 누구를 사랑하니까

결혼을 허락해 달라 하면 부모는 하나같이 똥 씹은 얼굴이 돼서

안�다고 하는 거 있지. 어떤 때는 절대로 안�다고 엄포를 놓고 그러지 왜.

드라마 속 부모들은 자식들 결혼 반대하는 재미에 사는 거 같다 이거야.

 

또 있다. 한국 여자들은 왜 그렇게 소주를 마셔대는지 나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어. 자다가 일어나서 혼자서 인상 쓰면서 소주 마시고,

남친하고 포장마차 속에서 눈웃음 살살 치면서 소주 마시고,

동창생 만나서 반갑다고 소주 마시고, 소주 광고 속에서 화장 짙게 하고

소주 마시고, 아이구, 정신 없다. 내 입에서도 소주 냄새가 나는 것 같네.

 

당신도 얼이 쑥 빠질 거야. 한국 여자들이 죽자고 소주를 마시는 걸 보면.

얘네들이 소주를 마시는 이유는 아주 간단해.

실연 당했을 때 소주는 필수사항이다. 이혼하고 나서 지 자식 보고싶다고

마시고, 하는 일이 잘된다고 기분 좋아 마시고, 그리고 어떤 때는 마실 만한

이유가 없다고 마시고, 도대체 소주가 안 나오는

한국 드라마는 드라마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맨날

부모가 결혼을 반대하니 술을 마시게도 생겼지. 당신이라면 안 그러겠어?

 

지지난 주에 뉴저지 한국이발소에 가서 머리 깎고 오는 길에 콧노래를 부르며

한국 수퍼에 가서 소주를 여러 병 사왔다. 한국 티비 보면서 저녁을 먹을 때

연속 드라마에서 여자가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 나도 

냉큼 소주 한 잔 할 요량이었지. 그랬더니 웬걸

그날 따라 이 채널 저 채널에서 웬놈의 사극만 하네.

울긋불긋한 두루마기 비슷한 옷을 입는 남자들이 "전하!" 하며 소리를 지르고

어떤 드라마는 옛날 장군들이 시커먼 수염에 눈을 부릅뜨고

무슨 복수심으로 악을 박박 쓰면서 웨치고 말이지.

그러고 보니까 옛날 우리 선조 시대에는 소주가 없었나부다. 큭큭.

 

 

© 서 량 2007.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