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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낙엽을 낯설게 그리기

서 량 2007. 10. 31. 05:22

오래 전에 쓴 졸시에

'나무잎이 지그재그로 떨어지는 것을 숨 죽이고 보고 있다'고 써놓고 혼자

흐뭇해 하던 기억이 난다. 그냥 구태의연하게  '낙엽이 진다' '낙엽이 떨어진다'

'포도(아스팔트)에 낙엽이 뒹군다' 하는 것 보다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에

'지그재그'(zigzag)라는 영어 의태어를 사용하고 스스로 괜찮아했던 거지.

지금 다시 읽어 보니까 그저 그런데 말이지. 히히.

 

시를 쓰다 보면 늘 그렇게 발길에 채이는 상투적인 생각과

단어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게 되고, 그러다가 어찌어찌 잘 빠지면

독자를 긴장시키는 표현이 나오면서 시의 신선도가 높아져서

그야말로 창작의 기쁨을 맛 보는 수가 종종 있어요.

 

시도 과일이나 야채 같아서 신선할 수록 좋다나요.

여자? 아, 여자는 사시미 생선처럼 신선하거나, 아니면

적당히 묵은 포도주 같이 알맞게 떫고 그윽해도 또한 좋다는데. 킥킥.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다가 오늘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낙엽이 지는 모습을 어떻게 좀 새로운 시선으로 그릴 수 있을까, 하다가

이런 표현들이 머리에 떠올랐어.

 

'낙엽이 가을 하늘로 하늘하늘 날아간다 나이 어린 솔개처럼'

'결국 낙엽은 땅과의 재회를 위하여 기쁘게 추락하는구나'

'낙엽이 유원지에서 깔깔대는 어린애처럼 허공을 미끄럼질 한다'

'낙엽이 내게 무슨 메세지를 주려고 떨어진다는 생각을 이제 하지 않기로 했다'

기타 등등...

 

어때, 당신이 듣기에? 이런 식으로 열거를 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은데.

근데 문제는 이렇게 말장난 비슷한 딱 한 줄만으로 시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거지.

시행의 앞뒤 관계가 어떤 시적 공간을 형성하느냐, 어떤 정서를 창출하느냐, 하는

아주아주 골치 아픈 문제가 있어요.

당신도 잘 알다시피 시도 사랑도 그토록 짤막한 말장난에서 그칠 수는 없잖아.

 

그래도 그 흔해 빠진 '가을이 되서 낙엽이 지니 나는 슬프다' 하는 식의

시시껄렁한 발언을 피하고 낙엽 자체에 어떤 생동감을 부여했으니까

좀 새로운 발상이 아닌가, 하면서 스스로 위로를 했어. 오늘 아침에.

 

그래서 시 한편을 썼냐구?

물론 못 썼지. 부랴부랴 늦은 출근을 하면서 어떻게 시를 써요, 시를 쓰기는.

 

 

© 서 량 2007.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