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얘기

|환자얘기| 칼빈의 스트레스

서 량 2007. 10. 20. 12:37

40대 초반 흑인 칼빈은 맥도날드 부엌에서 후렌치 후라이를

뜨거운 기름물에 담궜다 꺼냈다 하는 일을 한지 근 20년이 됐다.

 

칼빈은 정신이 좀 그런 점이 있어서 수 년 전에

약간 독한 진정제를 먹기 시작했지.

 

그의 표정은 늘 잔잔하다. 세상에

저렇게 표정이 잔잔한 인간이 또 있을까. 도를 닦는 도사의 표정도

칼빈의 단아한 얼굴을 쫓아가지 못한다.

 

그러던 칼빈이 얼마 전에 정신병원에 열흘 동안 입원을 했었는데

입원이유를 물어 봤더니 아주 조용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 째, 맥도날드에서 후렌치 후라이를 끓는 기름에 넣는 속도가 느리다고

좀 더 빨리 감자를 튀겨서 좀 더 많은 후렌치 후라이를 만들어야 한다고

자기에게 압력을 준 것.

둘 째, 근 10년을 같이 살던 자기 걸프렌드가 바람이 나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자기 친정(?) 집에 다녀 온다는 둥

외박이 심해졌다는 것.

 

그 두 개의 스트레스 정도야 꾹꾹 참고 견딜 수 있었는데

전세들어 사는 집 지붕에 물이 새서 지난 번 비가 심하게 내릴 적에

밤 사이에 혼자 자는 침실 지붕에서 물이 떨어져서 아침에 일어났더니

침실 바닥에 물이 발목까지 찼다는 것.

그 세 번째 스트레스가 가장 결정적인 역활을 했다는 거야.

그래서 그는 그날 눈 앞이 캄캄해져서 정신병원 응급실로 갔다는 거다. 

 

근래에 바람을 피는 걸프렌드가 주는 스트레스는 어땠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칼빈 왈, 자기도 그녀가 싫어진지 오래 됐던 차에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대. 그게 정말이냐고 다구쳤지. 그랬더니 글쎄 이 놈이 웃지도 찌프리지도

않으면서 부처 같은 표정으로 아무런 반응도 없이 나를

잔잔하게 바라보는 거야. 바람 죽은 호수처럼 흔들림 없는 안색으로.

 

© 서 량 200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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