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엽 아일랜드를 감자기근이 휩쓸고 간 얼마 후 월터 아버지는 세상 무서울 것 하나 없는 열 아홉 살 청춘에 조국을 저버리고 미국으로 이민 온다.
월터 아버지는 몇 년 지나 뉴욕시 전차 운전수로 운 좋게 취직이 되고 몸매 늘씬한 아이리쉬 극장주인 딸과 결혼하여 자식 여덟을 두는데 그 중 넷은 일차세계대전 직후 유행성 독감으로 죽고 월터를 포함해서 넷만 살아 남는다.
당시 뉴욕시에 전차가 없어지면서 버스가 처음 생길 무렵이라 전차 운전수들은 너도 나도 버스 운전수 자격증을 따는 일이 급선무. 월터 아버지는 대망의 버스 운전 실기시험을 며칠 앞두고 쉰 일곱 살에 당뇨병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때 월터 나이가 열 넷.
근래에 항우울제를 복용 중인 여든 두 살의 월터는 이른 아침 현관에서 노란 금테가 번쩍이는 전차 운전수 모자를 눌러 쓰고 조금씩 침을 뱉어 가며 구두를 반질반질하게 닦는 아버지를 그리워 한다. 추운 겨울 저녁이면 코밑 황제수염에 송알송알 서리가 맺히는 월터 아버지가 나도 그립다.
© 서 량 2003.09.11
--<현대시학> 2005년 4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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