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sex: 性)와 섹션(section: 面)은 라틴어의 ‘구분하다(secare)’ 혹은 ‘짜르다(sectio)’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명실공히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말이다.
14세기 말에 'sexus'라는 단어가 ‘남녀의 차이’라는 뜻으로 당시 라틴어를 쓰던 유럽인들에게 선을 보였다. 현대어로 ‘종파(宗派)’라는 의미의 ‘sect'도, 해부한다는 'dissect'도 다 같은 동네 출신이다.
섹스, 다시 말해서 ‘구분하다’ 또는 ‘구획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당신이나 나 같은 현대인들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얼굴을 붉히는가.
우리말도 마찬가지다. ‘성(性)’은 한자로 ‘품성 성.’ 이 말은 더도 덜도 없이 ‘품격과 성질’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교(交)’는 ‘사귈 교’이니 결국 ‘성교’라는 말은 ‘품성을 사귀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왜 ‘성교’라는 말을 들으면 아닌 밤중에 벌거벗은 남녀를 연상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섹스도 성교도 그 본래의 중립적인 뜻은 어느덧 사라지고 어떤 음란한 연상작용이 우리의 감성을 몽땅 착색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는 본능에 입각한 집단심리의 울긋불긋한 색안경을 쓰고 생각하고 느끼며 살고 있다.
이쯤해서 더 정도가 심한 말을 해볼까 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f--k'의 어원에 대한 연구조사다. 영국에서는 1857년, 미국에서는 1873년부터 법으로 사용금지가 됐던 이 단어는 1965년에 비로소 펭귄 사전(Penguin Dictionary)에 올랐다. 그만큼 양키들은 보수적이었다. 1971년에야 연방 고등법원에서 활자로 표기되는 것이 허용된 바 있는 이 이상야릇한 단어는 그 말의 뿌리에 대한 의견 또한 참으로 분분하다.
13세기에 구어로 등장한 'f--k'는 라틴어의 'fuccant'에서 왔다는 학설이 있고,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고어 'fukka' 혹은 ‘focka'에서 유래했다는 추측이 있다. 비슷한 발음으로 독일어의 'ficken'은 '앞뒤로 빠르게 운동하다’라는 의미가 16세기부터 쓰이기 시작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때 'f' 발음은 음성학에서 '마찰음'이라 한다. 윗니가 아랫니를 지긋하게 깨물 때 나오는 소리.
명색이 지성인으로써 우리말 중 입에 담기에 꺼림칙한 말이 몇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쌍시옷’이 들어가는 말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 단어는 ‘씨(種子)의 입(口)’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한다. 순수한 우리말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차라리 영어의 ‘sip'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이 형편상 속이 편하리라. ‘sip'은 야후사전에 그 뜻이 '조금씩 마시다, 찔끔찔끔 마시다, 홀짝이다'로 나와 있다. 이 단어는 의성어(擬聲語)다. 학구적으로 말하자면 'sip'의 's' 발음은 이빨과 혀가 부딪혀서 나는 소리, 치설음(齒舌音)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리들 귀에 '홀짝'으로 들리는 소리가 양키들에게는 '십'으로 들린다는 것. 이를테면 우리 귀에 '꼬끼요~' 하는 새벽 닭 우는 소리가 그들에게는 'cockadoodledoo~ (카커두들두~)'로 들린다는 사실도 동서양간의 의성어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잘 일깨워 주고 있다. 극작가이자 음악가이면서 천재로 소문난 영국의 코미디언 빌리 코널리(Billy Connolly)는 작년에 ‘f--k'가 ‘의성어’라는 단정을 내렸다. 어떤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잘 들어 보라. 소스라치게 공감이 가는 학설이 아닌가.
어제였는지 그제였는지 퇴근길에 눈보라가 심하게 쳤다. 하늘이 온통 캄캄하면서 미끌미끌한 파크웨이에서 차체는 중심을 잃은 채 심하게 비틀거렸다. 그 무지몽매한 차를 운전하는 내 마음 속에 무슨 생각이 오락가락했을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양키들이 물 마시는 소리며 입술을 깨물고 하는 마찰음이 저절로 튀어 나오더니.
© 서 량 2007.03.18
-- 뉴욕중앙일보 2007년 3월 21일 서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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