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이 가까이 오면서 겨울나무 잔가지에 푸릇푸릇한 색깔이 스며든다. 봄이면 우리를 찾아오는 빛은 단연코 녹색이다. 춘색(春色)이 완연한 요즈음 청색과 녹색의 차이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전통적으로 우리 뇌리에 깊이 각인돼 있는 '청산(靑山)'이라는 어휘가 참 신비롭고 이상하다는 느낌이다. 산을 멀리서 보면 푸른색으로 보이니까 그러려니 하다가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가 갸우뚱해 진다.
산을 가까이 다가가 보는 순간 산은 녹색이다. 나무와 숲이 엄연히 녹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왜 산을 녹산(綠山)이라도 하지 않았는가. 젊은 남녀를 녹춘(綠春)이라 하지 않고 왜 청춘(靑春)이라 했는가. 오죽하면 한때 우리 조상들이 하나같이 청색과 녹색을 분간하지 못하는 색맹들이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들이 청록 색맹이었다는 증거가 또 있다. 네거리에 달려 있는 교통신호등을 보라. 진한 배추빛 'green light'를 우리는 언어습관상 '녹신호'라 하지 않고 '청신호'라 한다. 우리는 왜 녹색을 무시하고 청색을 선호하는가. 차제에 청솔, 청소년, 청과시장을 녹솔, 녹소년, 녹과시장이라고 부르자는 캠페인을 벌릴 생각이 굴뚝 같다.
'green(녹색)'은 'grow(자라다)'와 말의 뿌리가 같다. 초록은 성장의 상징이다. 'greenhorn(푸른 뿔)'은 '신참내기'를, 'greenback'은 속어로 '돈'을 뜻한다. 이렇듯 'green'에는 싱싱한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지금도 돈 빛깔은, 특히 미국지폐는 펄럭이는 나뭇잎 색 녹색이다. 돈은 결코 확고부동하면서도 차갑고 고리타분한 청색일 수 없다.
노예생활의 애환을 노래한 흑인 영가에서 파생된 재즈의 전신인 불르스(blues)는 우울하다는 뜻이다. 요컨대 양키들의 청색은 저조한 기분을 표명한다. 당신이 기억하는 흘러간 팝송 중에 폴머리아트(Paul Mauriat)의 「Love is blue」, 닐다이아몬드(Neil Diamond)의 히트 송「Song sung blue」도 한결같이 사랑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영어 관용어에 'burn with a low blue flame (낮은 청색 불길로 타다)'는 아주 많이 화가 났다는 의미로서 우리말 슬랭의 '핏대가 왕창 났다'에 해당된다. 그리고 'talk until one is blue in the face'는 얼굴이 파랗게 질리도록 기진맥진할 때까지 한 말을 또 하고 한 말을 또 한다는 부정적인 뜻이다. 이렇듯 영어의 'blue'는 우리말의 '푸름(靑)'처럼 가슴이 설레는 고매한 뜻을 지니지 않는다.
양키들이나 우리나 푸른색을 중립적인 뜻으로 쓰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하다. 'blue print(청사진)'은 미래를 향한 꿈과 계획을 뜻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 모든 인류가 우러러보는 청공(靑空), 'blue sky'도 같은 표현에 속한다. 청색이 의미하는 미래와 푸른 하늘은 먼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뿌연 빛이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김소월의 <산유화>에서 우리는 자신과 대상 사이의 간격을 감지한다. 나와 산유화는 너무 가까이하면 안 되는 관계로서 서로 간에 늘 '저만치' 떨어져서 혼자 활동을 해야 된다는 고정관념의 지배를 받는다.
올해도 당신은 3월 17일 <성 패트릭의 날(St. Patrick's Day)에 성미 급한 아이리시들이 초록색 옷을 입고 시가를 행진하는 광경을 목격할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그들이 국가의 빛으로 삼고있는 초록의 근접성(近接性)에 흠뻑 취할 것이다. 그러나 하늬바람에 흔들리는 산유화처럼 우리의 청산과 청공은 늘 저만치 떨어져 있다. 우리는 여태껏 가까이 있는 녹색보다 멀리 있는 청색을 추구해 왔다. 미래 지향적인 정신상태에 안주해 온 것이다. 그것은 내일을 용감하게 계획하는 일보다 먼 내세(來世)를 향한 염원에 면면히 매달리던 우리 조상들의 유물이었다.
© 서 량 2007.03.07
-- 뉴욕중앙일보 2007년 3월 7일 서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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