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전 문학과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의 가교 역할을 한 소설가 토마스 울프(Thomas Wolfe)는 프로이드에게 정신분석을 의뢰했다가 정서가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깍듯이 거절 당했다. 그가 38살의 젊은 나이에 폐렴으로 요절하기 몇 달 전 탈고해서 1940년 사후 출판된 소설 제목은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You can’t go home again)’이다. 우리말 번역본도 나와 있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 이민자들이 듣기에 가슴이 메어지는 말이다. 600쪽이 넘는 이 방대한 자전적 소설은 다음과 같은 주인공의 독백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여기 미국에서 갈 곳을 잃어버렸지만 나는 우리가 길을 찾을 것이라 믿는다 (I believe that we are lost here in America but I believe we shall be found).’ 평론가들은 이 구절이 20세기 미국인들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표출이자 힘찬 절규라고 해석하고 있다.
누가 당신에게 고향에 돌아가라고 했을 때 당신은 토마스 울프의 마지막 소설 제목을 상기할 것이다. 우리는 누구도 고향에 다시는 돌아가지 못 한다. 고향은 우리 마음 속에 존재할 뿐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향은 추억과 그리움의 뿌리가 깊이 묻혀있는 지열(地熱)처럼 따스한 우리의 과거다. 당신도 나도 과거로 돌아 갈 수 없다. 과거는 꿈이나 다름 없다. 고향은 평생 재현할 수 없는 우리들 유년기의 꿈이다.
수년 전 한인 비지니스 거점인 뉴저지 팰리세이즈 팍(Palisades Park)상점 유리창에 밤 사이 누군가 스프레이 페인트로 ‘한국인들, 집에 가라!(Koreans, Go Home!)’고 낙서한 사건이 있었다. 반미감정에서 나오는 구호도 으레 ‘양키들, 집에 가라!(Yankees, Go Home!)’이다.
누가 당신에게 고향에 돌아가라고 했을 때 그 말에는 당신에게 현실을 떠나라는 잔혹한 전갈이 숨어 있다. ‘집에 가라’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의 서운한 힌트가 전달된다. 그 비정한 말은 현실 밖으로 탈퇴하라는 은근한 권유인 것이다.
영어에서는 가정이나 고향을 구별하지 않고 ‘home’이라 한다. 가정이 즉 고향이기 때문에 우리들처럼 본적지를 고향이라고 우기지 않는다. 우리는 인적사항에 꼭 현주소와 본적지를 따로따로 써야 하지만 양키들은 모든 문서에 대개 현주소 하나 만으로 족하다. 그들은 과거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어떤가. 현주소가 즉 고향이라는 사고방식이 당신은 부럽지 않은가.
“Make yourself at home.”라고 양키들은 자주 말한다. 집에서처럼, 고향에서처럼 마음 푹 놓고 처신하라는 말이다. “당신과 있으면 무척 마음이 편해(I feel very much at home with you).” 이 말을 들은 상대는 또 다음과 같이 대응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나도 절감해요. 나 무척 편안해요(It all comes home to me now. I feel very comfortable).”
미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가끔 나도 내 현주소가 고향이라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 쌍팔년도 유행가 김상진의 ‘타향은 싫어’를 들으며 묘한 감정에 빠진 적이 있었다. 자신의 뿌리를 파헤쳐 울며불며 매달리는 귀소본능을 자극하는,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타향도 정이 들면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말을 했던가 바보처럼 바보처럼/ 아니야, 아니야 그것은 거짓말 향수를 달래려고 술이 취해 하는 말이야/ 아, 아, 아, 아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
© 서 량 2006.10.02
-- 뉴욕중앙일보 2006년 10월 4일 서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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