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속담에 ‘Over-niceness is under-niceness’ 라는 말이 있다. ‘과잉친절은 불친절’이라는 진리를 시사하는 근사한 격언이다.
‘nice’는 ‘친절하고 인정미가 있다’는 말 같지만 그 뜻을 정식으로 찾아 보면 우리는 매우 당황한다. 오래 전에 미국 올 때 들고 온, 지금은 앞뒤 표지가 다 떨어지고 없는 누런 영한사전에 ‘nice’는 다음과 같이 설명돼 있다.
nice: 1.몹시 가리는, 까다로운 2.세심한 주의를 요하는, 다루기 힘든 3.세밀한, 딱딱한, 꼼꼼한 4.유쾌한, 기분 좋은 5.예쁜, 귀여운 6.인정미가 있는, 친절한 7.얌전한, 품위 있는 8.난처한, 싫은, 귀찮은.
위의 8개 항목 중에서 좋은 뜻은 4, 5, 6, 7번, 네 개뿐이다. 결국 좋은 뜻과 나쁜 뜻이 반반이다. 알고 보니 ‘nice’ 는 별로 ‘nice’한 말이 아니다. 속았다는 기분이 든다.
‘nice’는 본래 ‘바보스럽다’는 뜻이었다. ‘nice’는 14세기 라틴어의 ‘nescius’에서 변화된 말로 ‘모른다 (아는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명사로는 ‘nescience’. ‘아니’라는 뜻의 ‘ne’와 지식을 뜻하는 ‘science’가 합쳐진 ‘nescience’는 ‘무지(無知)’를 의미한다. 아직도 그 스펠링 그대로 고스란히 현대어 사전에 남아 있다. 부정의미를 지닌 접두사 ‘ne’가 쓰인 단어로는 ‘negative(부정적인)’ ‘neglect(무시하다) 등이 있다.
불란서 고어(古語)로도 ‘nice’는 ‘바보’라는 뜻이었다. 16세기에 들어서면서 ‘nice’는 ‘까다롭다’는 뜻으로 바뀌었고, ‘친절하다’는 의미로 바뀐 것은 18세기 중엽이다.
이쯤해서 'nice’에 대한 언어의 탐정놀이,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릴까 한다.
지금까지 피력한 논리에 의하면, ‘He is a nice guy’ 했을 때 일단 ‘그 놈은 인정이 많고 친절하다’라는 칭찬으로 들리겠지만 이면에는 그 놈이 아는 것 하나 없는 일자무식한 사람이라는 뜻이 숨어있는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 했다. 아는 게 없으면 힘이 없으니까 하다못해 친절하고 인정머리 있고 싹싹한 태도라도 취해서 상대방의 환심을 사야 되지 않겠는가.
언어의 변천이 인간 의식구조의 변천을 반영한다. 스스로 모르는 것이 많다는 자각심에서 오는 조심스러운 마음가짐이 14세기에서 18세기로 40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양키들의 태도를 그야말로 ‘나이스’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제 논리의 비약을 즐기는 당신은 불현듯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하루에 몇 번이고 상기해도 좋은 저 고대의 성현 소크라테스가 남긴 명언을. -- “내가 알고 있는 전부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 하나일 뿐이다.”
© 서 량 2006.09.04
-- 뉴욕중앙일보 2006년 9월 6일 서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427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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