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8. 뜨거운 것이 좋아

서 량 2007. 8. 25. 12:21

 

1959년도 영화, 마리린 몬로와 토니 커티스와 잭 레몬이 열연한 ‘Some like it hot'(뜨거운 것이 좋아)가 당신은 생각이 날지 모르겠다. 잭 레몬이, “I'm afraid it may take a little longer(생각보다 오래 걸릴 거 같은 데요)"라 말했을 때 마리린 몬로가 한 달콤한 응답을 혹시 기억하는가. "It’s not how long it takes. It's who's taking you(얼마나 오래 걸리느냐가 아니라 누가 당신을 동반하느냐가 중요한 거에요)"

'뜨거운 것이 좋아'는 다분히 체열적(體熱的)인 뉘앙스를 풍긴다. 뜨겁다는 말이 성적(性的) 흥분을 암시함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한 생명체가 성적인 욕구에 휩싸였을 때 혈액순환이 왕성해지고 체온이 상승해서 몸이 뜨거워 지는 것이 자연의 섭리요 법도다. 여성의 배란기 때는 체온이 껑충 올라가고 동물의 발정기를 ‘heat’라 하는 것도 다 일리가 있는 현상이요 발상이다. ‘She is hot’ 하면 두 말할 나위 없이 그녀가 섹시하다는 뜻이고 ‘He has the hots for you’ 하면 그가 당신이 좋아서 안달이 났다는 걸쭉한 슬랭이 아닌가.

뜨겁다, 따갑다, 따뜻하다, 뜨뜻하다, 뜨듯하다, 따스하다 같은 말들은 ‘따듯하다’와 말의 뿌리가 동일하다. ‘따듯하다’는 중세기 우리말의 '닷(아래아)다’가 변천한 말인데 ‘닷(아래아)다’에는 워낙 ‘사랑하다’(愛)와 ‘따스하다’(溫)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었다 한다. (태학사간 우리말 어원사전 284쪽)

인터넷에서 누가 당신의 글을 읽고 '즐감하고 갑니다' 라는 최신 유행어를 쓰는 대신에 '이 글은 참 따스한 글입니다'라고 댓글을 달았다면 그것은 즉 그 네티즌이 당신의 글을 사랑한다는 얘기가 된다.

얼마 전에 있었던 찜통더위와 열대야(熱帶夜) 현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곤욕을 겪었듯이 뜨거움은 한편 곤경을 의미하기도 한다. '뜨거운 양철지붕 고양이'는 얼마나 네 발에 물집이 잡혀서 퉁퉁 부었을까. '뜨거운 물(hot water)'은 난처한 상황이라는 뜻이고 ‘뜨거운 물건(hot item)’은 훔친 물건이라는 뜻이다. 영어를 그냥 직역해서 쓰이는 ‘뜨거운 감자’라는 말은 어떤가. 'He dropped me like a hot potato(그는 나를 뜨거운 감자처럼 떨어뜨렸어)'를 의역하면, 그가 나를 ‘헌 신짝처럼 버렸다’가 된다.

우리들은 워낙 기질이 알뜰살뜰해서인지 신발이건 사람이건 쓸데 까지 다 쓴 다음 사용이 불가능해 졌을 때에만 버리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성급한 양키들을 보라. 그들은 난처한 지경에 빠지면 무엇이던 얼른 버리지 않는가. 경제유통의 견지에서 보았을 때 감자쯤이야 얼마든지 더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무엇이 아쉬워서 손까지 데어가면서 알량한 감자 한 알에 매달려야 한다는 말인가. 음식이 너무 뜨거우면 혀를 데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맛 없는 국이 뜨겁기만 하다,' 라는 우리말 속담도 있지 않은가.

1940년대에 캘리포니아 재즈 연주가들 사이에서 단순하고 균형 잡힌 멜로디와 화음진행에 중점을 둔 연주 스타일이 생겨났는데 이것을 '쿨재즈'라 불렀다. 양키들도 우리도 입에 붙은 말 'Cool! (쿨~!)'이라는 간투사는 여기에서 유래한 것.

반면에 뉴욕의 재즈 연주가들은 아주 복잡다단한 불협화음과 요설적인 멜로디 테크닉을 과시하는 '핫재즈'를 전통적으로 추구했던 것이다. 예술이건 인생이건 냉철한 지성이 필요할 때와 화끈한 정렬이 높이 평가되는 경우가 서로 따로 존재한다. 그래서 심도 깊은 재즈 애호가들은 때에 따라 쿨재즈와 핫재즈를 선별해서 즐긴다. 우리가 말간 콩나물국을 선호하다가 소화기가 대경실색을 하는 매운탕이 입에 당기는 순간들이 있듯이.

© 서 량 2006.08.08

-- 뉴욕중앙일보 2006년 8월 9일 서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423271

 

[잠망경]뜨거운 것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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