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6. 수퍼맨 유감

서 량 2007. 8. 25. 11:25

 

‘super’는 라틴어로 ‘above; over; beyond’라는 뜻. 우리말로는 ‘높게; 위쪽으로; 너머’라는 의미다. 무엇을 뛰어 넘는다거나 초월한다는 뜻으로 아주 자주 쓰는 말.

 

‘super’가 들어가는 단어로는 ‘superiority; supermarket; superintendent; superego; supervisor’ (우월; 슈퍼마켓; 아파트관리자; 초자아; 감독) 같은 것들이 쉽게 떠오른다. 짤막한 감탄사로 ‘Super!’ 하면 ‘훌륭해!’라는 뜻. 또 다른 예로는, 몸에 꼭 끼는 청색 쫄쫄이에 붉은 망토를 입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Superman’ 또한 빼 놓을 수 없다.

 

1932년에 제리 시걸(Jerry Siegel)과 조 슈스터(Joe Schuster)라는 18살 짜리 두 틴에이저에 의하여 탄생한 만화 주인공 수퍼맨은 1938년에 전 미국에 보급되어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의 영웅이 됐다.

 

이 두 유태인 젊은이는 그 당시 아메리칸 드림을 가슴에 품고 갓 이민 온 부모들 밑에서 태어난 이민 2세였다. 이것은 수퍼맨이 크립턴(Kripton)이라는 외계의 별에서 갓난아기 때 아버지가 설계한 로켓을 타고 날아와 지구에 착륙한 우주의 이민자였다는 설정과 잘 맞아떨어진다.

 

구약성경의 모세와 현대의 수퍼맨과 그보다 일년 늦게 선을 보인 뱃맨(Batman)과 1962년에 뒤늦게 데뷔한 스파이더맨 (Spiderman)이 그러하듯, 자고로 영웅들은 하나같이 유아기에 부모를 떠나거나 일찍 부모를 여윈 후 양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속된 말로 우리 부모들이 아이들을 놀릴 때 쓰던 말로 ‘다리 밑에서 주어 온’ 자식들이다. 영웅은 불행한 환경의 부산물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영웅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건국신화에 나오는 환웅? 아니면, 홍길동? 임꺽정? 안중근? 유관순? 하다가 결국 이순신에서 생각이 멎었다. 솔직히 우리에게 영웅은 없다. 불의를 타파하는 초인보다는 조국을 위하여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한 애국지사들이 몇몇 있을 뿐. 미국의 영웅 범람현상과 한국의 영웅결핍증이 보여주는 이 엄청난 차이는 무슨 이유일까.

 

한국은 부모형제와 친지들의 정리로 이루어진 인맥사회다. 반면에 미국은 부모형제를 저버리고 자유를 찾아 온 이민자들의 땅. 한국은 출신과 지위가 인생을 좌우하고 양키들은 그런 것들을 들먹이지 않고 정정당당한 현재의 실력을 위주로 삼는다.

 

미국은 현재진행형 사회다. 이곳에서는 현존을 위협하는 외부적인 여건은 반듯이 타개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유력하다. 서부영화에서 자주 보는 개척정신이 끊임 없는 투쟁을 전제로 하지 않았던가.

 

오늘도 수퍼맨은 양팔을 앞으로 힘차게 뻗고 하늘을 날아다닌다. 그가 내려다 보는 이 오붓한 지구촌을 보호하려는 영웅심리에서 지금 양키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처럼 테러리즘을 속 시원하게 타개하지 못하는 판국에 그들로서는 신화와 만화의 공상과 상상이 주는 위안에 매달리는 것 말고 무슨 다른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 서 량 2006.07.10

-- 뉴욕중앙일보 2006년 7월 14일 서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418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