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4. 물고기가 상징하는 것

서 량 2007. 8. 23. 07:08

 2003년에 출판된 댄 브라운의 소설 세계적 베스트 셀러 <다빈치 코드>의 주인공은 하바드대학의 상징학(symbology) 교수다. 그는 말이나 그림이나 사물에 숨겨진 깊은 의미를 파헤쳐 알아내는 일을 업으로 삼는 학자다.

 

 ‘symbol’의 현대적 의미는 ‘상징’이다. 그러나 문헌에 의하면 이 단어가 로마와 그리스와 불란서에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1434년 경에는 ‘기독교적인 믿음’이라는 뜻이었다. 당시 정통 기독교인들은 스스로를 이교도와 구분하기 위하여 어떤 토큰(token: 징표)을 지니고 다녔고 필요에 따라 그것을 남들에게 제시하는 풍습이 있었으며 나중에 ‘symbol’은 ‘징표’ 라는 의미로 변천했다.

 

 고대 그리스 말로 ‘sym’은 ‘symphony’ ‘sympathy’에서처럼 ‘together’(함께)라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서 '심포니'나'심퍼시'는 ‘함께 하는 소리’ ‘함께 하는 아픔’이라는 의미. 그리고 ‘symbol’의 ‘bol’은 희랍어 ‘ballein’(던지다) 에서 파생된 말. 그러니까 ‘symbol’이라는 말의 뿌리는 ‘함께 던지다’라는 데 있다. 굳이 실존철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던져진 존재’가 아니었던가. 상징은 늘 함께 던져진 의미의 조합이다.

 

 요한복음 1장 1절이 이렇다.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요한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은 언어가 상징이라는 점이다. 태초에 언어가 있었는데 언어가 즉 신이었다는 사연은 신 자체가 상징적인 존재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1905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솅키에비치의 소설 <쿠오 바디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에서도 로마의 네로 황제에게 핍박 받는 기독교인들은 물고기를 막대기로 땅 위에 그려서 상대방의 신원을 파악했다. 요사이도 기독교인들은 종종 자동차에 물고기 범퍼 스티커를 달고 다닌다.

 

 십자가가 확고한 기독교의 상징으로 된 것은 네로 황제 시대보다 최소한 3, 4백년 후인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다. 그러니까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 되기 전에는, 비유적으로 말해서, 크리스천 멤버십 카드에 희랍어의 첫 글자 ‘알파’처럼 생긴 물고기 모양의 인장이 찍혀 있었던 셈이다. 예수 가라사대, “나는 너희들의 알파요 오메가이니…” 에서의 ‘알파’.

 

 기원전 수 백년 전에 중국에서 장발의 예수와는 반대로 삭발을 한 중들이 염불할 때 끈질기게 두들기는 목탁이 물고기 모양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왜 불교와 기독교는 허구 많은 사물 중에 하필이면 똑 같은 물고기를 그 상징으로 삼았는가. 하다 못해 ‘성불사 깊은 밤’에 은은히 울리는 풍경도 붕어 모양으로 생기지 않았던가. 대관절 물고기가 무엇이 그리도 빅딜이라는 말인가.

 

 알파벳의 첫 기호가 물고기 모양의 ‘알파’였듯이, 고대 중국에서도 우주의 시작을 물고기로 표시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대 유럽의 이교도들은 아예 노골적으로 물고기를 여성 성기의 상징으로 삼았다는 보고 또한 무수하다. 여성의 진수는 곧 생명의 원천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물고기가 상징하는 것은 바로 버자이너(vagina)였다. 이것이 바로 <다빈치 코드>에서 댄 브라운이 설정한 예수의 애인 막달라 마리아의 풍요로운 진면목인 것이다.

 

© 서 량 2006.06.12-- 뉴욕중앙일보 2006년 6월 14일 서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