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14

음악실 / 김종란

음악실 김종란 스테인드글라스 하늘에 낡고 닳으며 내려가는 계단에 한적한 구석에 시선을 내리다 웅성거리는 두개골 하늘 빛 비스듬히 지나는 나무의자에 꺼내 놓는다 음악에 방치한다 장엄하게 여리게 느리게 행진하듯 외과의사는 음악은 거침없다 기쁘게 뇌는 노출 되었다 뇌의 지도 위로 음악은 범람하다 일상의 문 넘는다 하루 하루 눈 먼 쥐는 뛴다 이리 저리 뛰다가 부딪혀 뒹구는 실험실 벽 음악이 온다 신의 손으로 자비롭게 노출된 두개골 쓰다듬는다 푸른 물 배인 흰 붕대 두른 채 눈 먼 실험실 쥐는 쉬이 부딪힌다 봄 스테인드글라스 하늘에 음악이 부딪힌다 © 김종란 2013.04.03

떠나는 소리 / 김종란

떠나는 소리 김종란 당신 거기 있었나요 부르는 소리 높은 산정 절벽 위 널따란 바위에 누워 하늘에 들어 하늘빛에 얼굴이 잠겨 당신이 떠난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누구나 떠나고 나도 떠나온 걸요 떠난다는 것은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 생선 비늘처럼 번쩍이기도 하는 몸을 지니고 태어나서 떠난답니다 마음 다잡고 간답니다 아마 다시 볼 수 없는 아마 죽을 때까지 볼 수 없겠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떠나는 소리 그 씁쓸함에 혹 씁쓸함을 더하지 않았나 하는 빈터에 울릴 떠나는 소리 © 김종란 2011.10.14

숨은 새 / 김정기

숨은 새 김정기 창공이 무섭다. 썩은 어둠을 두르고 작아지는 날개를 움직인다. 발톱에 찍히는 바람의 무늬 오그라들어 점 하나로 남는 공간. 숨어서 껴안는 작은 그림자들이 빛나고 우리가 함께 버렸던 하늘이 흙이 되었던 비밀을 일러주는 색깔들. 뒤꼍에서 들리는 노래 소리에 다시 자라는 날개가 꿈틀거린다. 달빛의 힘줄을 딛고서. © 김정기 2010.06.08

|詩| 거꾸로 보기

하늘이 좋아서 하늘을 거꾸로 보고 싶었어 철봉에 오금을 걸고 매달려 몸을 흔들다가 첨벙, 하늘로 뛰어들었지 당신의 신은 지금 어디쯤에서 목욕을 하고 있나 옛날 금관악기 소리 들린다 물소리, 신의 소리, 중세 음악, 하늘 속 깊이 깊이 거꾸로 치솟는 저 짙은 옥색의 파동! 적외선 경보 시스템이 작동 중 천기를 누설하려나, 첩보원 몇명 어슬렁거리네 새까만 동공을 감싸주는 홍채가 마구 진동하는 당신 꿈 끝부분에 꿋꿋하게 누워있어 나는 하늘을 발 아래 두고 아, 발 아래 두고 © 서 량 2021.09.26

2021.09.26

|詩| 맨해튼 봄바람

봄바람 부는 날 쪽배에 탄 채 강물에 떠내려 갔지요 물결도 내 몸도 내내 가벼웠어요 둥둥 떠내려 갔지요 맨해튼은 가벼운 섬입니다 맨해튼은 생김새가 꼭 고구마 생김새예요 맨해튼을 드나드는 사람들도 모두 얼굴이 고구마 모양이잖아요 자세히 보면 금방 알 수 있어요 바람이 목 언저리를 자꾸 파고드는 날 당신과 내가 수소, 산소, 질소, 탄소가 되어 하늘에 둥실둥실 떠다닙니다 맨해튼을 사랑하기 때문인가요 봄바람이 연거푸 불어오는 날이면 © 서 량 2008.04.14 - 2021.03.29

2021.03.29

|詩| 꽃단장

하늘이 먹구름을 덮는다 구름 건너편 세상 모퉁이가 보일까 말까 싶은 날 커다란 물고기가 깊은 당신 속에서 흐느적거립니다 커다란 물고기가 입 양쪽 가장자리에 긴 수염을 흔들며 두루두루 어둠을 탐색합니다 커다란 물고기는 거동은 향방이 뚜렷합니다 아까부터 진눈깨비가 오려나 했지요 진눈깨비에 대한 예측이 들어맞았어 세찬 바람이 고개를 드는 지축으로 진눈깨비가 휘몰아칩니다 꽃비, 꽃비가 쏟아집니다 휘날린다 하늘이 열리면서 구름 건너편이 보여요 화려해, 아주 화려해! 대지가 온화해지고 있어요 © 서 량 2021.02.25

2021.02.25

|詩| 떡갈나무의 오후 4시

누가 하루의 극치가 정오에 있다고 했나요, 누가 오후 네 시쯤 개구리 헤엄치 듯 춤추는 햇살의 체취를 얼핏 비켜가야 한다 했나요 봄바람은 이제 매끈한 꼬리를 감추고 없고, 초여름 뭉게구름이 함박꽃 웃음으로 지상의 당신을 내려다 볼 때쯤 누가 작열하는 오후의 태양을 품에서 밀어내고 싶다 했나요 반짝이는 떡갈나무 잎새들 건너 쪽 저토록 명암이 뚜렷한 쪽빛 하늘 속으로 절대로 철버덕 몸을 던지지 않겠다고 누가 말했나요 © 서 량 2009.05.29

발표된 詩 2020.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