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18

|詩| 여름 바다

여름 바다 --- 마티스 그림 “빨간 우산과 함께 옆으로 앉은 여자”에게 (1919-1921) 수평선이 가까이 보이네 방안에 접혀진 우산 끝이 뾰족해요 빨간 줄이 죽죽 간 테이블 보 꽃 대여섯 송이 방안도 방 밖도 다 눈부셔 눈부셔 여름을 향해 열린 커다란 커튼 여자가 빨간 양산 아래 앉아 있는 옆 모습 숨소리도 안 들려 전혀 안 들려 詩作 노트: 바다가 여름을 압도한다. 바다를 가까이 하는 마티스의 여자가 여름을 제어한다. 여름은 빨강과 청색의 시원한 어울림이다. 우산도 함께한다. © 서 량 2023.06.16

여름 / 김정기

여름 김정기 닫힌다 잠구어진다 한땀씩 꿰매진다 막이 내린다 그래도 열고 돌리고 뜯고 창밖에 잣나무 우듬지를 꺾는다 구겨지며 오르는 막이 어설퍼도 무대는 황홀하다 들꽃들. 넝쿨도 열매도 자라고 떠나간 사람도 여름을 열러 닫혔던 고요를 딛고 현관을 연다 허공은 포효하고 헤매던 땅이 열린다 조금씩 여름이 떠나가고있다. © 김정기 2020.07.31

남은 여름 / 김정기

남은 여름 김정기 여름 강에 물고기들은 내 편이다 세상의 물고기들은 모조리 내편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그가 토하는 물의 숨소리를 그 빛깔을 지상이 아닌 것 같은 아름다움을. 자작나무 숲도 내 편이었다 내가 속이 비어가는 것을 어찌 알았는지 순하디 순하여 속이 빈 나무들은 모두 내 편을 들어 주었다 천군만마를 얻어 겁날 것 없는 올해 나는 붉은 피가 되어 물고기의 맥을 점령하고 나무 가지 하나로 지휘하니 싸워서 이겨 내 품에 돌아온 평화의 얼굴을 만진다. 그리고 그대들은 말이 없다 내 안에 쌓인 시간에 불을 질러 가을을 맞을까보다 남은 여름을 부술까보다. © 김정기 2010.08.13

|詩| 대천해수욕장

11살쯤 때 대천해수욕장, 당신이 등허리 따끔한 타이어 고무 튜브를 타고 둥실 두둥실 떠 내려 가는 거지 파도에 밀리고 밀려 유년기 평화에 씻겨 해변이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면서 당신의 의식도 점점 깊어지는 거지 生을 들여다보는 공포와 부모 친구 사랑 모두 차가운 물살에 휩쓸리는 여름 한복판 멀리 멀어진 해변과 당신의 몸부림을 가느다란 거미줄이 이어주는 현실과 꿈을 맨가슴으로 판가름하는 당신이 힘이 풀리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지 11살쯤 때 대천해수욕장, 당신이 등허리 따끔한 해변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이 지금껏 둥실 두둥실 떠내려 가고 있는 거지 가면 갈 수록 더 깊어지는 검푸른 바다 속으로 © 서 량 1994.08.02 첫 번째 시집 (문학사상사, 2001)에서 수정 - 2021.07.30

2021.07.30

|詩| 등목

뼈아프게 쌓아온 정성이 무너지면서 당신이 자지러지는 광경인지 목이며 등뼈 줄기 언저리에서 흔히 터지는 일입니다 분노가 수그러지는 조짐일지 아무의 잘잘못도 아닐 수도 어떤 미적지근한 생각이라도 벼락치듯 작살나는 순간입니다 미음자로 사방이 막힌 한옥 마당에서 속 깊은 들숨 날숨을 멈추고 기역자를 45도로 엎어 놓은 몸집이 하늘 지붕을 든든히 떠받히는 순간 당신이 소스라치는 여름은 무탈합니다 © 서 량 2020.08.02

2020.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