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내게 대충 이렇게 말한다. “형이 정신병이 있었고, 누나는 유명한 재즈 가수였고, 아버지는 내가 두 살 때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평생을 쇼핑몰에서 일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다가 마침내 나는 응수한다. “모든 집안 식구에 대하여 자세하게 말하면서도 본인 자신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게 흥미롭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게 뭐가 잘못된 거냐고 거칠게 반응한다. 환자가 부모와 형제자매에 대한 원망심을 털어 놓고 싶어하는 마당에 내가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그는 세션이면 세션마다 쉬임 없이 똑같은 카타르시스 시나리오에 매달리고 나 또한 끈임없이 똑같은 사연을 귀담아듣는다. 정신상담이 증오심의 배설에서 그치는 경우에 더 이상 아무런 진전이 없는 제자리 걸음이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은 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