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9

복사꽃 나무 그늘을 거닐며 / 김종란

복사꽃 나무 그늘을 거닐며 김종란 깨알 같은 소식에 귀 기울인다 누대에 걸친 서까래 대들보만큼 무거워 휘청이는 쉼표, 마침표. 몰래 후두득 봄비 소리에 묻히는 그늘을 구기고 구겨서 꽃으로 살아낸 것의 목소리 웃음소리 땅의 온기와 더불어 살아있던 것의 온기 무수히 지나가는 생명의 발자국 소리 죽이며 채 말이 되지 못한 두근거림으로 복사꽃에 가까이 다가간다 사랑에 다가가듯 거짓말처럼 연분홍 빛 그늘 © 김종란 2012.04.08

|詩| 봄비의 반란

봄비의 숨결이 거칠다 조그만 사각형을 클릭하면 쐐기 모양의 체크마크가 고개를 치켜드는 내 컴퓨터 모니터에 봄비가 줄줄 내린다 봄비가 아프다 봄비는 순순히 자연의 법칙을 따를 뿐 당신은 얼굴을 붉히면서 그렇지 않다고 속삭인다 소프트웨어를 받아드리는 기본방침에 동의하는 봄밤에 봄비의 숨결이 깊어진다 봄비의 잔물결이 참 좋아요 봄비의 어깨가 체크마크 모양으로 한쪽으로 치우치다가 불현듯 치솟는다 나를 한사코 거부하듯 봄비가 지붕을 탕탕 때리는 봄밤이면 © 서 량 2020.02.29

2020.02.29

|詩| 달팽이 몇 마리

시간이 당신을 아무리 재빠르게 지나친다 해도 이제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겠다 봄비가 내리고 있어요 병동 아득한 복도 끝에서 누군가 소리칩니다 몇 알의 신경안정제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한 줌 햇살이 내 살갗에 와 닿아요 요즘은 하고 싶은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간간 남 생각을 하지 않는 우리의 나쁜 버릇을 어쩌나 싶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며 얼굴을 치켜드는 당신이 참 좋아요 나는 기꺼이 허무를 감싸 안는다 습기 그득한 시간, 시간의 갓길을 천천히 기어가는 연체동물 몇몇을 실눈을 뜨고 보고 있어요 이제는 어엿한 봄이 아닙니까 밖이 © 서 량 2019.03.25

2019.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