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왔다 가듯 / 김종란 꽃이 왔다 가듯 김종란 끝자리 벚꽃 바람에 자유하듯 소리 마음껏 지르다 침묵하다 웅얼거리다가 꽃이 가는 소리 따라 검은 소 한 손에 잡고 신(神)과 더불어 간다 하늘 물든 손으로 감싸 쥐는 따뜻한 욕지거리에 차가운 기도(祈禱) 한점 날렵히/ 우짖는 짐승에 얹힌 잠잠한 신(神)의 눈길 맛있는 스시 깨끗한 접시에서 군더더기 없이 바라 본다/ 꽃 지는 소리 허기지며 자유하리니 멍에 벗는 소리/ 네가 왔다 가듯 © 김종란 2013.4.22 김종란의 詩모음 2023.01.02
흰 눈 벚나무 / 김종란 흰 눈 벚나무 김종란 벚꽃 어리는 눈 핏발이 서린 겨울이네 흰 눈 벚나무 수정 빛 여행가방 손잡이 알맞게 누그러졌으니 가볍든지 무겁든지 무릎 꿇고 양말을 개며 바지 탁탁 털어 접으며 오늘의 수업 마치고 목숨의 한 부분 말끔히 지운다 살아있어, 그 신비로움으로 뭉싯거리는 몸짓으로 문을 열고 낮고 짙은 회색 구름속에서 이무로이 찰라의 것들 낌새를 훔쳐내지 눈을 찌그려라도 뜨고 응시하면 물꼬가 터져 흰 눈 벚꽃이 진다 검붉은 열매가 드러난다 살아있어 봄 겨울에 흰 눈 벚나무 © 김종란 2011.02.06 김종란의 詩모음 2022.12.21
우산으로 가리는 봄 / 김종란 우산으로 가리는 봄 김종란 봄에서 문을 닫아 걸고 우산으로 가려보는 낡은 미래 봄은 예외가 없지만 눈을 크게 뜨면 무모한 마음에 벚꽃이 날리는 걸 잠시 멈출 수 있지 목울대를 울리며 침을 삼키면 다시 암전 검은 알몸의 벚나무는 빛의 알갱이 머금은 눈물보를 터트리지 종이 보풀아기 진 익숙한 지도 마음 반쯤 감고 짚어오다 빛을 삼킨 너의 질주에 한 걸음 멈칫 비켜선다 길을 가득 메우며 우산들은 떠있다 저마다의 심정으로 봄의 소리를 가린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길 너는 휘파람을 불면서 날렵하게 달린다 돌아보며 씨익 웃는다 종이가 찢어지듯 봄우산은 쉬이 뒤집힌다 © 김종란 2010.03.30 김종란의 詩모음 2022.12.14
|詩| 틀린 음정 4월이 폭주한다 브릉 부르릉 샛노란 개나리 벚꽃 자목련서껀 서슴없이 합세하는 화살 다발 다발 소스라치게 날아가는 4월 사랑 피아노 페달을 심하게 밟지 않아도 괜찮아 페달에서 발을 아주 떼면 안돼 머리가 하얗게 센 온음표를 일부러 빠듯하게 연주하면 곡이 이상해지지 머리칼이 새까만 4분 음표들이 보무 당당하게 걸어가는 순간이다 군대식 질서 강약 중강약 척척 강약 중강약 착착 4월이 내뿜는 소리를 파스텔컬러로 그리려 해요 무관심과 애절함에 흠뻑 젖는 연주 태도 때문에 점수가 좀 깎인다 해도 *“틀린 음정을 치는 일이 곡을 틀리게 해석하는 짓보다 낫다…” 하며 소나타 형식을 난데없이 무시하고 얼떨결에 우수수 떨어지는 벚꽃 사랑이다 실성하는 자유를 박탈당한 entity답게 실성하는 자유를 완전 박탈당한 entit.. 詩 2022.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