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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기차를 타고 / 김정기

밤기차를 타고 김정기 바람에 덜미 잡혀 밤기차를 타고 떠나는 늦여름 저녁 아홉시 반 그대 머리칼에 나부끼는 진고동색 윤기가 챙 넓은 모자 속에서 숨죽이고 있네 개칠한 무늬 같은 죽은 깨 몇 알 콧날 위에서 흘러내려오고 가두었던 시간 어두움과 버무려 포로롱 풀려나는 멧새가 되네. 차창에 내린 커튼 젖히고 적막과 만나는 그대 아메리카의 땅 냄새를 싣고 가는 밤기차를 타고. 때로 뱃속에서 꿈틀대는 화냥끼를 명품가게에서 산 옷 한 벌을 우리 집 정원에서 자란 청청한 소나무를 그 삭을 줄 모르는 끈끈한 송진 냄새를 부윰하게 떠오르는 山麓을 향해 던지며 던지면서 내던지면서 오늘도 밤기차를 타고. © 김정기 2009.08.30

검은 소는 없다 / 김종란

검은 소는 없다 김종란 검은 손이 옆구리 곁에 슬몃 비친다 검은 꽃은 언제부터인가 검은 소의 고삐를 틀어쥐고 있다 빛이 쏟아져 검은 꽃 끝없이 스며들어 빛은 이제 검은 꽃 검은 소의 눈은 희다 흰자위로 드넓다 검은 손이 지나가는 검은 꽃 푸른 혈관의 그물에 걸려 있다 무릎이 희게 헤어진 검은 소 뒤로 뒤로 아득히 물러나며 검은 꽃은 피어나서 고삐를 쥐고 있다 낮 낮 낮과 밤 밤 밤과 밤낮 푸른 피의 그물 안에 피어나는 검은 꽃은 고삐를 쥐고 있다 © 김종란 2009.08.31

|詩| 밤의 노래

습도 백 퍼센트 되는 새벽쯤 해서 끈적한 수증기로 사라지리라 먼 은하수 돛단배 뱃노래 에헤야 데야 일렁이며, 일렁이며 당신의 신경을 건드리는 굵다란 첼로 멜로디와 내 창문을 때리는 팀파니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 주먹만 한 두 눈이 얼굴을 완전히 차지한 자궁 속 태아가 머리를 숙이면서 예쁜 생선 등골이 C자로 휘어지는 먹물 하늘에 몸을 던진다, 기꺼이 던집니다 베토벤 심포니 9번 4악장쯤 해서 젊음을 벗어난 바리톤이 냅다 소리치는 한밤, 기나긴 순간에 © 서 량 2018.10.01- 2021.05.19

2021.05.19

|詩| 어두운 조명

색깔을 원했던 거다 입에 절로 침이 고이는 과일 그림도 좋고 열대 섬에만 서식하는 화사한 꽃 무리의 난동이라도 괜찮아 정물화가 동영상으로 변하고 있네 무작위로 흔들리는 미세한 바람이며 부동자세로 숨을 몰아 쉬는 새들이 어슴푸레 아울리고 있어요 흔적으로 남을 우리 누구도 서둘러 떠나지 않을 거다 보일 듯 말 듯 가물가물 빛을 흡입하는 색깔의 아우성을 듣는다 시퍼런 탐조등이 밤을 절단하는 어둠의 틈서리에서 우리는 몸을 뒤척인다. © 서 량 2012.01.25 --- 네 번째 시집 에서

발표된 詩 2021.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