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詩모음

밤기차를 타고 / 김정기

서 량 2023. 1. 30. 20:18

 

밤기차를 타고

 

                            김정기 

 

 

바람에 덜미 잡혀

밤기차를 타고

떠나는 늦여름 저녁 아홉시 반

그대 머리칼에 나부끼는 진고동색 윤기가

챙 넓은 모자 속에서 숨죽이고 있네

개칠한 무늬 같은 죽은 깨 몇 알

콧날 위에서 흘러내려오고

가두었던 시간 어두움과 버무려

포로롱 풀려나는 멧새가 되네.

차창에 내린 커튼 젖히고

적막과 만나는 그대

아메리카의 땅 냄새를 싣고 가는

밤기차를 타고.

 

때로 뱃속에서 꿈틀대는 화냥끼를

명품가게에서 산 옷 한 벌을

우리 집 정원에서 자란 청청한 소나무를

그 삭을 줄 모르는 끈끈한 송진 냄새를

부윰하게 떠오르는 山麓을 향해

던지며 던지면서 내던지면서

오늘도 밤기차를 타고.

 

© 김정기 2009.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