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기차를 타고
김정기
바람에 덜미 잡혀
밤기차를 타고
떠나는 늦여름 저녁 아홉시 반
그대 머리칼에 나부끼는 진고동색 윤기가
챙 넓은 모자 속에서 숨죽이고 있네
개칠한 무늬 같은 죽은 깨 몇 알
콧날 위에서 흘러내려오고
가두었던 시간 어두움과 버무려
포로롱 풀려나는 멧새가 되네.
차창에 내린 커튼 젖히고
적막과 만나는 그대
아메리카의 땅 냄새를 싣고 가는
밤기차를 타고.
때로 뱃속에서 꿈틀대는 화냥끼를
명품가게에서 산 옷 한 벌을
우리 집 정원에서 자란 청청한 소나무를
그 삭을 줄 모르는 끈끈한 송진 냄새를
부윰하게 떠오르는 山麓을 향해
던지며 던지면서 내던지면서
오늘도 밤기차를 타고.
© 김정기 200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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