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 글동네/시

밤을 그리다 / 최양숙

서 량 2011. 10. 13. 03:43

 

밤을 그리다

 

                         최양숙

 

 

 

어둠은 사방에 검은 눈처럼 쌓여

소란했던 동네 소리를 삼킨다

사물이 태어나기 전 태동을 느끼듯

어둠에 감춰진 동네를 살며시 만져본다

한 낮을 두들기던 빛은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고

가방을 멘 아이들의 어린 발걸음 소리도

다른 차들을 세우던 노란 버스의 권위도

지금은 허공 어디에서 내려와 쉬고 있겠지

집집마다 부지런히 들고나던 차들도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 차고문 안에서

하루의 피로를 삭이고 있다

집안으로 해를 들였던 네모난 창들은

달아오른 숯이 붉은 빛을 발하듯

온기 속에 꿈을 꾸고 있는데

언뜻 보이는 TV 속에서 색깔이 분주하다

가로등을 감싸 안은 가로수 잎새가

바람에 흩어지는 불빛을 모아 쥐려 애쓸 때

창 밖을 주시하는 작은 강아지 어둠을 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