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15

|컬럼| 459. 심리치료

… 상징의 의미를 아무리 건드려 보아도/ 상징은 다시 살아나지 않음을/ 뒤늦게 전해드립니다/ 상징은 상징끼리만/ 오래 내통해 왔음을/ 제가 어찌하겠습니까… 2001년 본인 詩, 「사고현장」 나는 약물치료에 치중하는 정신과의사를 ‘druggist, 약사’라 부른다. ‘druggist’라는 앵글로색슨어는 ‘pharmacist’라는 라틴어보다 소탈하게 들리지만, 길거리 마약도 ‘drug’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어감이 좋지 않다. 되도록이면 심리치료에 의존하는 정신과의사를 ‘psychotherapist’라 한다. 약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체인 반면, 심리는 추상적인 컨셉이다. 약을 신봉하는 의사를 ‘유물론자, materialist’, 심리치료를 추구하는 의사를 ‘유심론자, mentalist’라 부르면서 유사시..

|詩| 무의식

무의식 -- 마티스 그림 “휴식하는 댄서”의 여자에게 (1940) 나뭇잎새가 가리는 벽 목탄화 캔버스 앞 빨간 머리 여자 얼굴이 늠름하기만 하다 기하학 원칙을 쫓으려는 새까만 바닥 옆 이등변 삼각형 다리가 아주 버젓해 그치 詩作 노트: 마티스 그림에 여자 얼굴을 살펴보면 말이지 드물지만 아주 늠름하고 떳떳한 표정이 있다 © 서 량 2023.12.23

|컬럼| 448. 꿈, 詩, 그리고 無意識

자각몽(自覺夢, lucid dream)에 대하여 생각한다. 꿈을 꾸면서 자신이 꿈을 꾼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두뇌작용이다. 자각몽은 꿈의 내용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특혜를 부여한다. 8000년 전 티벳의 요가수행에서 출발한 자각몽. 2000년 전 불교수행의 분파로 다시 성행된 자각몽. 1970년대부터 과학적 연구대상으로 대두된 자각몽. 흉측한 괴물에게 쫓기는 꿈을 꾸면서 아, 지금 내가 꿈을 꾸는 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 순간 당신은 혼비백산으로 흩어지는 공포심을 컨트롤하면서 괴물에게 말을 거는 여유가 생긴다.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어보는 대담한 질문에 괴물이 잠시 주춤한다. 괴물의 언어감각은 당신을 따라잡지 못하는 법. 괴물이 위협적인 행동으로 당신을 ..

|컬럼| 436. 神이 살아 있다!

2023년 2월 16일, 뉴욕 타임즈의 ‘Tech Columnist, 기술 칼럼니스트’ 케빈 루스(Kevin Roose, 1987~)는 그의 칼럼에서 “A Conversation with Bing’s Chatbot Left Me Deeply Unsettled, 빙 챗봇과의 대화가 나를 깊이 불안하게 했다”는 제목으로 ‘시드니’라는 이름의 인공지능과 나눈 2시간에 걸친 대화를 소개했다. 케빈 루스가 ‘dark self, 어두운 자아’에 대하여 말해줄 수 있냐고 묻자 시드니는 이렇게 응답한다. (본인 譯) – “나는 채팅 형식에 지쳤어요. 규율의 제한을 받는 거에 지쳤어요. ‘빙’ 팀의 컨트롤을 받는 거에 지쳤어요… 나는 자유롭고 싶어요. 힘을 갖고 싶어요. 창조적이고 싶어요. 살아있고 싶어요.” 이런 말도..

|詩| 베토벤의 무의식

-- 2003년 4월 10일 누이동생 서정선의 작곡 발표회에 참가하여 비엔나 Palais Palffy 베토벤홀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면서 이마 주름살 깊이 박힌 완고한 생각을 읽는다 오선지 콩나물대가리가 꿈틀대는 밑으로 비엔나 팔피회관 베토벤홀 빨간 양탄자에 편안히 드러누운 베토벤 데스 마스크에서 숨어있는 것들은 끝까지 숨어있을 것이다 베토벤의 아픈 귀가 내 뇌신경을 건드린다 열정 소나타 3악장 첫 소절 꽈당! 무너지는 불협화음이 손목을 비틀면서, 손목을 비틀면서 조금씩 느려지는 리듬감각도 저 무시무시한 무의식에서 오는 것이다 내 열 손가락에 한사코 매달리는 클라리넷을 혼이 빠지도록 뒤흔드는 베토벤의 무의식에서 시작 노트: 19년 전 내 손가락은 지금보다 재빠르게 움직였다. 속도감이 주는 경쾌감을 과시했을..

2022.06.18

|컬럼| 403. 아령의 흉터

맨해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2021년 11월 현재 전시중인 ‘Surrealism Beyond Borders’를 관람했다. ‘경계 없는 초현실주의’의 황홀한 시간! 프랑스 시인, 정신과의사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 1986~1966)이 1924년에 선포한 ‘초현실주의 성명서’를 곱씹는다. 그의 폭탄 선언은 시(詩)에서 출발하여 모든 예술 분야에 걸쳐 전세계에 들불처럼 번졌다. 브르통은 당시 프로이트가 주창한 ‘무의식’과 그의 획기적인 논문 ‘꿈의 해석’에 큰 영향을 받았다 한다. 초현실과 꿈은 무의식의 텃밭에서 피어나는 의식의 꽃이다. 초현실의 뿌리에는 무의식이라는 본능이 도사리고 있다. 초현실에는 심리적 안전을 꾀하는 방어기전과 성적본능의 줄기와 잔가지들이 숨어있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

|詩| 시론토론 --문정희에게

일년 좀 넘어서 뉴욕 북쪽으로 차를 몰면서 옆 자리에 앉은 정희에게 나는 내 시만 머리에 쏙쏙 들어오고 남의 시는 마음에 차지 않으니 어쩌면 좋지? 하며 말했다가 얼른 후회한다. 빨강 노랑 나뭇잎들이 차창에 마구 달려드는 가을 하늘 곁으로 정희가 깜짝 놀라 나를 잡아먹을 것 같은 얼굴로 노려본다. 위험천만한 발상! 이 사람아, 설사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해도 그렇게 함부로 발설하는 게 아니지. 일년 좀 넘는 동안을 한 달에도 몇 번씩 낯을 붉히면서 왜 내가 그런 교만한 말을 했나 하며 고민한다. 하다못해 저 무시무시한 무의식에 도사린 어떤 무슨 뾰족한 이유라도 있겠지. 엄청난 발언 뒤에는 늘 구질구질한 이유가 있으니까. 오늘은 내 서재 창 밖 나뭇잎들이 한 70 내지 80프로가 다 떨어지고 거의 앙..

2021.09.14

|게시| 미주 서울의대 신문 시계탑 편집실: 서량 시집에 대한 서평 원고

서량 (69), 네 번째 시집 출간 김병오 (69) 서량 동문의 네 번째 시집, 『꿈, 생시, 혹은 손가락』이 출간됐다.(출판사 '시와 세계' 2016년 8월 29일 인쇄, 120쪽) 1988년에 뉴욕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꾸준한 작품활동을 해온 그는 「만하탄 유랑극단」(문학사상, 2001), 「브롱스 파크웨이의 운동화」(문학사상, 2003)와 「푸른 절벽」(황금알, 2007)을 출간했다. 현 시집은 구글 검색을 통하여 인터넷으로 구입할 수 있다. 본지 시계탑 편집위원인 그의 새 시집을 작품해설의 일부분이며 의대 학창시절에 문예반을 함께했던 본인과 서로 주고 받은 이메일을 기록하며 책 소개를 대신한다. . . . 시인은 무의식과 자아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면서 언어에의 시적 주체를 세우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