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심 3

|컬럼| 286. 사랑스러운 붙음

당신과 내가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윤회설과 인과응보 사상에 입각한 불교의 12인연 법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고리를 연결한다. ①무명(無明) ②행(行) ③식(識) ④명색(名色) ⑤6입(六入) ⑥촉(觸) ⑦수(受) ⑧애(愛) ⑨취(取) ⑩유(有) ⑪생(生) ⑫노사(老死). 이런 한자어로 우리를 압도하는 묵직한 문자들 때문에 주눅이 들지는 말거라. '①무지 ②행동 ③의식 ④명색 ⑤6개 감각 ⑥만지기 ⑦받기 ⑧사랑하기 ⑨갖기 ⑩존재하기 ⑪태어나기 ⑫쇠퇴하기'라고 쉽게 풀면 고만인 것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춤추듯이 돌아가는 이 삼라만상의 변천 과정에 애착이라는 현대심리학 용어를 적용시키는 학구적인 작업에 몰입하기로 한다. 애착은 '⑥만지기 ⑦받기 ⑧사랑하기 ⑨갖기 ⑩존재하기'라는 명찰을 가슴에..

|詩| 수제비구름

이제 와서 당신을 애틋하게 익힐 수 있다니 나보다 어린 나이 내 옛날 부모도 희뿌연 어항 속 금붕어도 무궁한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망설임 끝에 누구나 과거를 등지고 돌아서는 거래요 네모 반듯한 제사상에 기우뚱 세워진 할아버지 사진이 허상이었어 여름방학 키 큰 노적가리 시골 할머니 집 부엌에서 내게 꼬리치며 달려들던 강아지도 허상 트럭 운전사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지구 반대편에서 내 쪽으로 다가온다 트럭은 거대해 우주의 운동신경도 허접한 동영상일 뿐 지저분하게 흩어지는 수제비 물방울 겹치듯 포개지는 사랑 산마루 언저리로 둥둥 뜨는 수제비구름도 거대해 어머, 영원한 아침은 징그러워 나는 확고한 하늘빛으로 얼어붙는다 당신을 향한 거대한 그리움에서 © 서 량 2011.03.16 – 2021.07.04

2021.07.04

|컬럼| 391. 고흐를 동정하다

-- There is peace even in the storm. (Van Gogh) – 평온은 심지어 폭풍 속에도 있다 (고흐) 한 미약한 인간은 인정사정없는 폭풍의 괴력을 맞닥뜨리지 못한다. 열악한 현실에서 한 가닥의 평온을 구가하는 향취가 전해지는 고흐(1853~1890)의 짧은 명언을 곱씹는다. 폭풍이 거창하고 사나운 객관이라면 평온은 한 개인의 희망사항과 의지가 깃들어진 주관이다. 객관과 주관을 이렇게 갈라놓는 내 의도는 환경이라는 외부상황과 평온이라는 내부상태와의 상호관계를 조명하는데 있다. 고흐는 37살의 아까운 나이에 권총 자살로 힘겨운 생을 마감했다. 그의 정신질환에 대하여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의견을 피력한다. 정신분열증, 조울증, 간질, 알코올 중독, 성격장애 같은 굵직굵직한 병명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