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물고기 합창단 파도가 철버덕철버덕 옆구리를 때리는 동안 생선 가시가 입천장을 콕콕 찌르는 동안 내 연삽한 유년기 그림책에서 뛰쳐나온 새빨간 금붕어며 말로만 듣던 울긋불긋한 비단잉어며 전기 찌르르 오르는 거무죽죽한 뱀장어며 미끈한 민물 미꾸라지들이 지휘자 눈치를 잘 살피고 잔기침도 참아가며 긴장한 표정으로 첫 소절 첫 소리를 읍! 하며 한 박자 쉬고 곡을 시작하네요 순 재즈 식 불협화음이지 당신이 할 말이 많을 때 터지는 그런 불협화음이지 물론 바다에 금붕어들이 버글거렸다 말도 안돼 파도에 휩쓸리며 금붕어들이 바이올린 멜로디에 박자 맞춰 내 팔뚝이며 허벅지에 조근조근 입질하고 있어 간지러워요 웃음이 나와 아무리 참으려 해도 못 참겠어 물고기들이 노래할 때 꼬리지느러미를 같은 포지션으로 잡고 몸을 흔드네 훌륭해 아주 좋아.. 詩 2021.07.15
|詩| 어항 주인 꼬리가 길게 늘어진 금붕어를 멀리 떨어져서 보면 마치도 곱게 펼쳐놓은 조그만 장난감 부채를 보는 기분이 든다 이 조그만 장난감 부채는 맑은 물속에서 살랑살랑 바람을 일으킨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오랜 세월을 금붕어를 키우기 위하여 고생을 해 왔고 마음 속 전쟁을 벌려 온 것이다 어항 주인이 다년간 경험한 바에 의하면 금붕어들 중에도 제일 생명력이 강한 금붕어는 노리끼리한 주홍색의 몸 빛깔에 흡사 시골 개천에서 흔히 잡을 수 있는 민물붕어의 축소판으로 보이는 금붕어다 생김새가 총알 처럼 보이는 이 강인한 족속은 6.25 때 청량리 역전 쯤에서 우리들 발길에 아무렇게나 채이던 어린애 손가락 정도 크기의 M1 총알과 허물어진 시멘트 벽 기총사격의 상처와 恨을 연상 시키는 데가 있다 전쟁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전.. 발표된 詩 2020.09.13
|詩| 비디오 렌즈와의 대화 당신은 가상현실이다 진한 향기에 흠뻑 젖은 볼록렌즈 건너편에 가만가만 모로 누워있는 어두움의 평화다 렌즈 속 어둠이 통째로 움직인다 남자애인지 여자애인지 알 수 없는 조그만 어린애가 나를 응시한다 눈은 강아지 눈에 양손 양발이 춤추는 금붕어 화려한 지느러미다 © 서 량 2020.05.13 詩 2020.05.13
|詩| 헷갈림 가을이 따스하다 가을에야 따스해진다 봄이라면 으레 그러려니 하련만, 합의를 보는 중이랍니다 서로 눈짓을 주고 받으며 뒷마당 떡갈나무 맵시 좋고 마음 넓은 잎새들이 뿔뿔이 흩어지자는 일정에 합의를 보는 중이랍니다 차마 눈뜨고 못 볼 속살까지 따스한 금붕어들이라면 으레 그러.. 詩 2017.10.23
|詩| 붕어의 탈바꿈* 붕어가 살결이 기름지고 혼령이 풍요하면 잉어로 탈바꿈한다 하셨지요 붕어 몸에 장난 삼아 알록달록한 페인트칠을 하면 옛날 서울 신신 백화점 분수대의 내 팔뚝만한 크기의 잉어가 된다 하셨지요 미끈거리는 피부의 자이언트 금붕어가 아가미를 펄떡거리는 호흡법에 등골이 서늘해졌.. 詩 2010.09.01
|詩| 금붕어의 긴급동의 그런 일은 화려한 동물왕국 귀여운 짐승들 몽롱한 꿈 속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라던데요 바람에 바스러지는 낙엽의 참뜻이나, 심심산천 계곡의 바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래요 큼지막한 거북이가 하이 테너로 노래하는 메뚜기 한 놈을 날름 잡아 먹네 입맛을 짭짭 다시며, 몸.. 詩 2010.07.07
|詩| 날아가는 금붕어 금붕어는 여간 하지 않고서는 지 마음의 향방을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나, 꿈속에서 나긋나긋한 거미줄 지느러미의 금붕어가 돼 본 적이 있어서 금붕어의 그런 속성을 잘 알지 깜박이지 않는 금붕어 눈에 포커스를 맞춰 갓 찍은 이 폴라로이드 사진을 봐봐 색깔이 음침해, 진짜 음침해 핏빛 금붕.. 발표된 詩 2010.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