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5

|詩| 시계바늘이 그토록

낮 12시 10분 전쯤을 한 쪽 팔 길게 뻗쳐 버티는 시계바늘 장침이 보여주는 힘 한겨울 분홍 국화 한 송이 빛이 관통하는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서 시계바늘이 이루는 *arpeggio 잔 파동 산지사방으로 물결치는 은하수 은싸라기 잿빛 지구 위 낮 12시 10분 전쯤에 밤 10시, 11시를 알리는 괘종소리 뎅뎅 울리네 한겨울 바람결 싸락눈이 우리는 왜, 우리는 왜, 하며 나직하게 창문을 때리는 대낮에 *아르페지오 - 분산화음, 화음을 빨리 연속적으로 연주하는 주법 시작 노트: 싸락눈이 내린다. 싸락눈은 입춘이 지난 지열 때문인지 서재 옆 드라이브웨이에 내리자마자 이내 녹거나 바람에 날려서 아스팔트를 덮지 못한다. 국화 한 송이 꽃잎 하나하나가 싸락눈으로 둔갑한다. 국화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모습이 낮인지 밤..

2023.02.22

진양조의 공간 / 김종란

진양조의 공간 김종란 당신은 가두지 않겠어요 바람 부는 곳 눈 내리는 곳 낙엽 지는 곳에 있어요 지켜 보고 있어요 비인 곳 까마득한 산불 일어 미세하게 느리게 침묵하는 것들은 함께 흔들리어 늦은 볕 아래 투명하게 불 붙다가 텅 비어져요 산뜻하게 베어져 이 빈터에 놓이네요 잠시 눈시울에 머뭇거리다 흘리지 못해 반짝 빛나다 별빛 아래 물기 듬뿍 머금은 흰 국화(菊花) 사라지는 것을 은유(隱唯)하며 이 비인 곳을 지나네요 *국악의 가장 느린 장단 © 김종란 2009.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