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시계바늘이 그토록

서 량 2023. 2. 22. 18:34

 

낮 12시 10분 전쯤을

한 쪽 팔 길게 뻗쳐 버티는 시계바늘  

장침이 보여주는 힘

 

한겨울 분홍 국화 한 송이

빛이 관통하는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서

시계바늘이 이루는 *arpeggio 잔 파동

산지사방으로 물결치는 은하수 은싸라기

 

잿빛 지구 위 낮 12시 10분 쯤에

밤 10시, 11시를 알리는 괘종소리 뎅뎅 울리네

한겨울 바람결 싸락눈이 우리는 왜, 우리는 왜,

하며 나직하게 창문을 때리는 대낮에

 

*아르페지오 - 분산화음, 화음을 빨리 연속적으로 연주하는 주법

 

시작 노트:
싸락눈이 내린다. 싸락눈은 입춘이 지난 지열 때문인지 서재 옆 드라이브웨이에 내리자마자 이내 녹거나 바람에 날려서 아스팔트를 덮지 못한다. 국화 한 송이 꽃잎 하나하나가 싸락눈으로 둔갑한다. 국화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모습이 낮인지 밤인지, 하여간 12시에 가까운 시각을 가리키고 있다. 싸락눈이 분산화음을 연주한다.

 

© 서 량 202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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