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상을 운영하며 혼자 사는 이혼녀가 말한다. “당신이 하는 어려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나를 깔보는 듯한 눈빛으로 잘난 척하는 태도도 기분 나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면 안될까요?” 하니까 이런 응답이 나온다.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거든요. 외출 후 아파트에 돌아오면 꼬리를 흔들며 내게 뛰어옵니다. 이곳에 내가 도착할 때마다 그런 식으로 반겨줬으면 좋겠네요.”
그녀와 내 마음의 결이 맞지 않는 느낌이다. 반가워 꼬리치는 강아지처럼 애정 있는 분위기를 내가 풍기지 못한 거다. 그런 멘탈 이미지에 그녀는 강한 애착심을 품고 있다.
존 보울비(John Bowlby: 1907~1990)는 ‘애착이론, Attachment Theory’으로 정신상담 발전에 크게 공헌한 영국 정신분석가. 그는 생후 6개월부터 24개월 사이에 부모라는 ‘애착대상’을 ‘안전기지’로 삼아 아기가 엉금엉금 기거나 아장아장 걸어가며 주변을 탐색하고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형성되는 ‘애착관계’가 정서적 성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이론을 주창한다. 대가족환경의 아기는 부모 외에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등등도 애착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프로이트는 아동심리의 발달단계를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로 구획하여 설명한다. 다분히 의사답고 해부학적인 발상이다. 내가 추구하는 ‘대상관계 이론' 또한 보울비의 애착이론처럼 아이와 부모가 이루는 대인관계에 역점을 두면서 이른바 ‘인맥’이 주요 관건이다.
메리 에인스워스(Mary Ainsworth: 1913~1999)는 미정신분석가로 보울비의 이론을 계승하여 부모와 낯선 사람이 포함된 아이의 애착행동을 연구했다. 그녀는 ‘낯선 상황(Strange Situation)’이라는 표제로 모종의 실험절차를 고안한다. 그 연구 결과로 아동의 애착 스타일을 넷으로 구분한다. ➀안정형(Secure) ➁불안-회피 불안정형(Anxious-Avoidant Insecure) ➂불안-저항 불안정형(Anxious-Resistant Insecure) ➃혼돈형(Disorganized). - 우리는 모두 ➀번을 소망한다. 가장 안 좋은 ➃번을 피할 수가 있다면, 애석하지만 ➁, ➂번의 경우를 견뎌내야 한다.
지금 나는 한두 살 되는 아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애착의 형성과 붕괴 과정은 사람의 평생을 따라다니는 이상한 시추에이션이라는 명제를 들먹이고 싶은 거다.
성인이 된 후의 부모형제관계, 친구관계, 애인관계, 부부관계, 등등 모든 인간관계에 애착이 깔려있는 한 우리의 삶은 풍요롭다. 사전은 애착을 ‘몹시 사랑하거나 끌리어서 떨어지지 아니함. 또는 그런 마음’이라 풀이한다.
‘attachment’의 동사형 ‘attach’는 11세기 고대불어로 ‘체포하다’라는 뜻이었고 13세기 라틴어로 재산이나 땅을 법으로 몰수한다는 의미였다. 전인도 유럽어로 ‘말뚝’이라는 뜻. 사람을 체포해서 말뚝에 묶어 놓는 장면이 떠오른다. 어원학적으로 애착심은 심리적인 결속감의 처음과 끝이다. 당신이 이메일에 부착하는 첨부파일(attachment) 또한 메일 내용과 영원히 결부된다.
옛날 그 고물상 여주인은 나를 강아지에 비유한 세션 후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았다. 최소한의 애착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을 상호책임으로 돌릴까 하다가 마음을 바꾼다. 애착은 사랑과 닮은 데가 있어서 한쪽만의 마음가짐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현세기에 있어서 대인관계는 쌍방통행인 것이다.
© 서 량 2023.12.10
뉴욕 중앙일보 2023년 12월 23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23/12/12/society/opinion/202312121807026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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