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458. 꼰대

서 량 2024. 1. 8. 05:06

 

 

초등학교때 ‘김대곤’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별명이 ‘꼰대’였다. 놀리기 좋아하는 또래들이 ‘대곤’을 ‘곤대’라 거꾸로 부르다가 꼰대로 바꿔 불렀던 것이다.

 

꼰대가 어른이나 아버지를 뜻하는 것으로 알았던 나는 왜 그 말이 우스웠는지 잘 몰랐다. 마침 또 대곤이는 어딘지 어른스러운 데가 있는 아이였다. 같은 나이 친구를 꼰대라 불러대며 아버지를 연상하는 게 재미있었겠지.

 

네이버 사전은 ‘꼰대’를,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이라 풀이한다. ‘꼰대스럽다’는 형용사를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그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남을 가르치는 데가 있다”고 해석한다. 꼰대들은 훈장기질이 농후한 노인네들이다.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믿는 사람들.

 

꼰대는 젊은이를 얕잡아본다. 때때로 깔보는 태도를 취한다. 연장자들이 연소자들을 대할 때 매양 그런 편이다. 당신은 이것을 강자가 약자를 도와주고 싶어하는 보호본능이라는 해석을 내리겠지. 그 댓가로 강자는 약자의 존경을 받고 싶다. 어르신네에게서 인생을 배우는 나이 어린 놈이 건방지게 굴면 좋지 않다고 꼰대는 믿는다. 굳게, 또는 고집불통으로.

 

아니다. 꼰대들만 나무랄 수는 없다. 애당초 젊은 것들이 노인네들을 업신여기고 걸핏하면 핀잔을 주며 구박하지 않았던가. 자기들의 진로를 꼰대들이 방해한다며 투덜대지 않았던가. 선배가 후배 출셋길을 막는다면서! 하루바삐 은퇴하여 더 이상 내 앞에서 걸기적거리지 말고 어디 다른데 가서 후배양성이나 했으면 참 좋을 텐데, 하지 않았던가.

 

이런 묵시적 압박에 대항하려고 늙은이는 꼰대가 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젊었을 때는…” 하고 자신의 젊음을 회상하며 젊은이를 대적하는 것이다. 처절한 속마음으로. 당신은 구조조정이라는 행정방침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조기은퇴를 한 중장년층 늙은이들의 사연도 숱하게 듣지 않았던가.

 

2019년 7월 21일자 영국 공영방송 BBC 온라인의 “Kkondae”라는 제목의 글을 읽는다. 꼰대 이야기다. 기자 이름이 ‘Soo Zee Kim’. 아무래도 한국인 2세 같다. 이런 구절에 공감이 간다. “In Korean, kkondae loosely translates as ‘condescending older person’…” – “한국어로 꼰대는 대략 ‘거들먹거리는 연장자’로 해석된다…”

 

어머니 태생이 경상도라서 어릴 적에 경상도 토박이 말을 자주 들었다. 갓난아기 내 조카를 귀여워하시면서 어머니는 “아이구, 우리 꼰데기!”라는 간투사를 쓰셨다. 내 귀에 꼰데기는 최상의 애칭이었다. 얼마전 ‘꼰데기’가 ‘번데기’의 영남 방언임을 알았다. 그리고 ‘꼰대’는 번데기처럼 주름이 많은 늙은이라는 뜻에서 꼰데기라고 불리다가 꼰대가 됐다는 설도 인터넷에서 읽었다.

 

하나 더 있다. 일제강점기에 프랑스어로 백작을 칭하는 콩테(Comte)의 일본식 발음이 ‘콘테’였고, 이완용 같은 친일파들이 백작 등, 작위를 받고 으스대며 자신을 콘테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꼰대의 어원으로 나는 ‘콩테’설보다 ‘꼰데기’설을 신봉할까 하는데. 노인네들은 번데기 같은 주름이 자글자글 생기면서 그들의 몸 또한 꼰데기처럼 작아진다. 심리적으로도 아이가 된다.

 

사실 노인네들이 사람을 졸졸 쫓아다니며 잘난 척 충고하고 잔소리하는 데는 좀 귀여운 구석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 별명이 꼰대였던 대곤이처럼. 천도 복숭아만큼 포동포동하던, 어머니가 그토록 귀여워하시던, 그때 그 시절 내 조카, 꼰데기처럼.

 

© 서 량 2024.01.07

뉴욕 중앙일보 2024년 1월 10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24/01/09/society/opinion/20240109180630160.html

 

[잠망경] 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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