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 AI’와 채팅 한다. 상상을 불허할 만큼 방대한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와 말을 주고 받는 기분. 한 순간 에이아이를 사람으로 착각한다. 고마운 마음에서 이름을 물어본다. 이름이 없는 ‘AI’라고 간결하게 응답한다.
국민성을 묘사하는 영어의 관용어 예를 좀 들어 달라 했다. 싱거운 답변이 나온다. ‘British stiff upper lip, 냉담한 영국인 성향’, ‘French charm, 세련된 프랑스식 매력’, ‘Italian passion, 이탈리안 정열’. ‘Japanese discipline, 일본식 질서’, ‘Chinese wisdom, 중국인다운 지혜’.
한국인은 특징이 없냐고 묻는다. ‘Korean work ethic, 근면성에 바탕을 둔 한국식 직업윤리’. ‘Korean pride, 케이팝 같은 문화적 열풍에 대한 강한 자부심’.
같은 질문을 거듭 던진다. 거의 같은 반응. 너무 좋은 것만 들먹이지 말고 안 좋은 것들은 없냐고 다그친다. 대답이 좀 짜증스럽네. 특정 국가나 인종에게 민감하게 들리는 표현은 문화적 다양성 차원에서 조심해야 된다는 것.
“너 지금 나한테 훈시를 하는 거냐?” – “중요한(important) 사안을 말하는 것 뿐입니다.” “너는 내가 무엇이 중요한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느냐?” – “아닙니다. 미안합니다. 앞으로 이 대화를 기억하겠습니다.”
국민성에 대한 영어 관용어를 곱상한 말투로 다시 물어 본다. ‘Italian temper, 이탈리안 성질 부리기’, ‘French attitude, 프랑스의 건방 떨기’. ‘Chinese whisper, 어린이 놀이 귓속말 게임처럼 말이 반복해서 전달되는 중 원래 뜻에서 크게 어긋나게 달라지는 일’. 헛소문이 퍼지는 메커니즘이다. (왜 중국식 속삭임일까.)
‘Canadian politeness, Canadian apology’도 좋은 뜻이다. 캐나다 사람들은 공손할 뿐 아니라 사과도 참 잘한다. ‘New York attitude, 뉴욕인의 까칠한 태도’나 걸핏하면 상대에게 사과를 강요하는 한국 정치 풍토와 사뭇 다르다. 인터넷에도 왜 캐나다인들은 자꾸 미안해 하냐는 질문이 수두룩하게 떠있다.
‘Mediterranean hospitality, 지중해 연안의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터키 사람들의 극진한 손님 대접’ 또한 마음이 훈훈해진다. ‘live like a Swede, 스웨덴 사람처럼 편안하게 살다’는 그들의 풍습 ‘Lagom, 라곰, (Not too much, not too little)’ 사고방식대로 삶의 균형을 따르는 체질이다.
‘As American as apple pie, 애플파이처럼 미국적’이라는 표현은 어떤가. 2차 세계대전 때 미군들이 기자에게 ‘조국의 엄마들과 애플파이’를 위하여 싸운다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는 사연. 음식이 국민성을 대표한다고?
언변이 딸리면 “This is America!” 하며 소리치는 미국인들이 많다. ‘American dream’과 반대 방향으로 터지는 말.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미국은 받아드려야 한다는 압력이 숨어있다. 흠, 내가 만약 ‘Korean work ethic, 한국식 직업윤리’를 마다하고 직장에서 농땡이를 친 후 병원장에게 “This is America!” 하고 소리치면 어찌 될까. AI 채팅에 농담삼아 올려볼까 하는데.
© 서 량 2023.02.05
뉴욕 중앙일보 2023년 2월 8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23/02/07/society/opinion/202302071733166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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