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435. 우리가 원하는 것들

서 량 2023. 2. 20. 11:59

 

병동 직원들에게 환자들과 우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직원들은 별로 공감하지 않는 눈치다. 상상해 보라.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외과의사처럼 정신과의사가 자신이라는 주체와 환자라는 객체를 완전 별개로 취급하는 정경을.

 

정신과에서는 주체와 객체사이에 간극이 심하면 치료가 힘들어진다. 나나 환자나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똑같은 인간이다. 그래서 나는 우울한 감정에 휩싸여 있는 환자를 대할 때 함부로 웃지 못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수사학의 3대요소를 생각한다. 에토스(Ethos, 도덕). 로고스(Logos, 논리). 파토스(Pathos, 감성). 그는 이 셋을 잘 운용하면 대중을 설득시키는 훌륭한 웅변이 된다고 가르쳤다.

 

셋 중에서 제일 강력한 것은 파토스. 고린도 전서 13장 13절에 나오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 셋 중에서 가장 유력한 것이 사랑이라는 말과 상통한다. 파토스와 사랑은 한국과 미국 정치가들이 애지중지 활용하는 대중선동술 또는 수법이다.

 

프로이트의 자아, 초자아, 본능(id)이라는 정신의 3대 요소에 견주어 보면 ‘love’를 본능에 비유해도 될 것 같다. 모든 인간의 생존을 좌지우지하는 돈을 자아에, 권력을 권위있는 초자아에 결부시켜도 크게 억지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기독교의 삼위일체론. ‘Holy Trinity’! 성부, 성자, 성령이 한 몸이라는 강론. 불경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때도 성부를 초자아, 성자를 자아, 그리고 성령을 고귀한 차원에서의 본능이라는 가설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 병동직원이 사람이 원하는 것은 돈과 섹스와 권력, ‘Money, Sex, Power’라 농담 비슷하게 말한다. 잠시 생각에 잠긴 후에 ‘sex’를 ‘love’로 바꾸어 다시 말한다. - ‘Money, Love, and Power’. – 나는 그와 동의하면서 얼른 덧붙인다. 환자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다!

 

목요일 아침 병동 ‘Community Meeting’ 시간! 매일을 예식처럼 치루는 ‘아침 조회’다. 오후에 용돈을 지급한다는 발표가 있자 환자들이 모두 흥분한다. 비즈니스 오피스에서 운영하는 각자의 금전상태에 따라서 지급되는 포켓머니의 액수가 다들 다르다. 서로간 액수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소리를 지르며 덤벼드는 오후쯤 파토스가 활개를 친다.

 

돈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설명이 잘 통한다. 너는 지난 주에 얼마만큼 받았으니까 이번 주에는 이 정도다, 하면 알아듣는다. 로고스 만세! 알파벳 순서로 이름을 부르니까 규칙대로 자기 차례가 올때까지 직원에게 가까이 오지 말아라, 하는 규범을 척척 지킨다. 에토스 만점! 긴장감 넘치는 목요일 오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의 꽃이 피는 병동이다.

 

‘money’는 로마의 여신 ‘Juno’의 별칭 ‘Moneta’에서 유래했다 한다. 주노는 숱한 신들의 최고 데빵 주피터의 아내로서 돈과 자본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Moneta’는 고대 라틴어로 ‘상기하다, 경고하다’라는 뜻이었는데 아직 그 잔재가 ‘monitor, 모니터하다’에 남아있다. ‘화폐’의 형용사 ‘monetary’는 여신 이름과 거의 같은 발음이다.

 

로마 신화 시대에 돈관리를 여신이 맡았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목요일 오후에도 남성보다는 여성 보조간호사가 용돈을 지급할 때 병동의 분위기가 훨씬 더 원활하다. 그 예식을 모니터하는 간호사도 여성이 하면 환자들의 삶에 대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 더욱 더 돈독해 진다. 삼위일체!

 

© 서 량 2023.02.19

뉴욕 중앙일보 2023년 2월22일 서량의 고정 컬럼 <잠망경>에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23/02/21/society/opinion/20230221174752769.html

 

[잠망경] 우리가 원하는 것들

병동 직원들에게 환자들과 우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직원들은 별로 공감하지 않는 눈치다. 상상해 보라.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외과 의사처럼정신과 의사가 자신이라는 주체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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