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에는 외래진료소에서 환자를 보면서 당신과 나 같은 이른 바 정상인들의 정신적 갈등과 고통을 다루었다. 환자의 꿈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 때에 따라 유효한 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지금은 폐쇄병동 입원환자들을 상대로 하면서 그들의 꿈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전혀 없다. 그 대신, 그들의 환청이나 망상 자체가 꿈이나 다름없다는 경이감에 빠진다. 자존감의 빈곤으로 비관하는 환자가 과대망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소원성취(wish fulfilment)에 급급한 심리상태가 빚어내는 비현실적 현실이다. 소원성취는 꿈의 가장 고마운 기능이다.
꿈에 소원이 성취되는 것은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이다. 엄청난 소원이 아니더라도 조그만 소망이 충족되는 순간 당신은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오랫동안을 행복해하지 않았던가.
언어 기능이 없는 갓난아기도 꿈을 꾼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 강아지나 고양이도 꿈을 꾼다 한다. 비언어(非言語)적인 꿈을 꾸는 것이다. 어릴 적 집 강아지가 양지 바른 마당에서 자면서 끙끙대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심지어는 공포에 질린 듯 짖기까지 했다.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강아지도 나쁜 꿈을 꾸었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이 있는 사람이 악몽이 잦은 경우가 많다.
PTSD 환자들은 과거의 체험을 꿈에 반복적으로 재현함으로써 공포심을 달래고 기억을 희미하게 하려는 본능적인 시도를 거듭한다. 마치도 소가 소화하기 힘든 위 내용물을 역류시켜 반추하는 되새김질이나 마찬가지다. 마침내 어렵고 힘든 체험과 음식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신진대사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꿈은 생물학적 본능과 인간적 심리상황의 혼합체다. 1976년에 하버드 대학이 발표한 ‘Activation Synthesis Theory, 활성화 합성설’에 따르면, 당신과 내가 자는 동안 중뇌(中腦)에서 무작위로 발생하는 전기자극이 전뇌(前腦)에 도달하는 순간 우리의 오감(五感)과 언어감각이 어떤 의미를 창출해 내는 것이 꿈이다. 중뇌는 동물적 기능을 주관하는 뇌. 전뇌는 인간의 특권인 지성(知性)의 헤드쿼터. 꿈은 동화나 소설이나 다름없는 스토리텔링이다. 꿈은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예술품이다. 시(詩)도 같은 부류다.
인류의 사고방식을 크게 바꿔 놓은 프로이트는 1899년에 ‘The Interpretation of Dreams’에서 전위(傳位, displacement)라는 꿈의 원칙을 설명한다. 전위는 자리바꿈이라는 뜻. 꿈을 꾸는 동안 초자아의 검열이 두려운 나머지 노골적인 장면이나 등장인물을 슬쩍 바꿔치기 하는 자아(自我, ego)의 지혜가 적용된다. 자리바꿈이 말바꿈을 일으키고 급기야 막말이 고운 말로 바뀌는 것이다.
우리의 무의식은 하고 싶은 말 대신에 ‘딴 소리’를 하는 절차를 밟는다. 이런 메커니즘이 꿈의 현장, 시작법(詩作法), 현대 미술, 그리고 당신과 나의 일상어를 지배한다. 사회라는 거대한 검열당국의 눈치를 보면서 무의식의 표현 욕구를 무마시키는 자아의 처세술이다.
프랑스 정신분석가 라캉(Lacan, 1901~1981)은 “무의식은 언어의 구조를 닮았다”는 명언을 남겼다. - The unconscious is structured like a language. 이쯤해서 나는 목청을 가다듬고 이렇게 외친다. “언어는 꿈이다.” - Language is a dream!
© 서 량 2021.08.22
뉴욕 중앙일보 2021년 8월 25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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