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를 잊듯 커튼을 열어 제친다 함박눈 속 깊이 더러운 마음으로 죽은 사람들이 켜켜이 파묻혀 있구나 몸이 거무죽죽한 어미 사슴이 새끼 네 마리를 데리고 꼬리를 사르르 떤다 어미가 연신 고갯짓을 하니까 새끼들이 눈을 얼굴에 문지르며 세수를 하는 거 있지
한 놈이 머리를 들어 내 방 안을 들여다본다 바람결 시린 귀를 뒤로 제치고 부르르 떤다 그놈이 더럽게 살아있는 내 마음을 차근차근 뜯어보다가 한참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난 듯 눈 덮인 언덕 쪽으로 갑자기 겅중겅중 뛰어가는 거 있지
시작 노트:
눈 내린 아침에 사슴을 마주하리라는 예측을 전혀 못했지. 사슴과 나는 서로가 살아있다는 걸 기쁘게 확인한다. 에미 사슴도 새끼 사슴도 꼬리를 사르르 떨거나 몸을 부르르 떨더라. 고갯짓도 하고 겅중겅중 뛰기도 하던데. 나만 그냥 실내에 가만이 서 있고.
© 서 량 2002.12.12 – 2022.12.16
https://news.koreadaily.com/2022/12/30/life/artculture/202212301735014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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