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몸에 우유를 들이붓듯
김종란
출렁이는 구름 연두색으로 개화하는 잎들
초록으로 가는 기적소리 아직 고치 안에 잠들었다
음악 듣고 차 마시며 연두색 세상을 본다
흰 구름 나지막이 드리우는 창
창 안에서 잠든다 잠 드는 걸 학습한다 *바벨의 도서관
장난감 병정들, 줄 서다 쓰러지며 서로 기댄
끝없는 책들
시간이라 명명되는 불확실성 속에서 펼쳐보는
땅을 한걸음 한걸음 밟고 걸어나간 그대 내면의 소리
숨 쉬는 활자, 공기 속에서 꿈 속에서 물음 속에서
날아든 말의 홀씨, 발아된 음표, 몸을 살면서 기록해둔 내밀한
개인의 일지, 울부짖음 병약함 의혹 한 겹 한 겹 젖히면
미소와 활기 믿음 꽃잎이 겹치듯 피어나 무리져 만개하는
빛과 어둠이 함께 일렁이는 모자이크
기록한다 창 밖이 얼마나 연두인지
울음이 끝, 숨을 고르며 몸을 감싸며
환한 빛의 무리, 연두를 본다
바람이 빚어내고 바람이 무너뜨리는 연두
* 호르헤 루이스 보르훼스의 단편소설
(The Library of Babel, by Jorge Luis Borges, 1941)
시작노트:
창 밖 나무들의 연두 기록하고 싶다. 캄캄함과 어둠 이편에 서서 연두이고 싶다. ㅡ 인간은 허구의 창조자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이 허구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고 있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허구다. 우리는 어둠을 견디기 위해 꿈을 꾼다. 우리는 꿈을 꾸지만 누군가의 꿈 속의 인물이기도 하다.ㅡ 보르훼스의 문학론 중에서
© 김종란 202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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