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 있으면 교양 있는 사람일지라도 군중에 속하는 동안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야만인이 된다. – 귀스타브 르봉
1960년도 후기에 히피 문화(hippie culture)가 미국을 휩쓴 적이 있었다. 히피들은 머리에 꽃을 꽂고 다니면서 사랑과 평화를 외치며 전쟁반대 시위를 벌였다. 공동집단 생활(communal living)을 하고 프리 섹스와 혼음(混淫)을 일삼았다.
젊은 시절 열성파 히피였던 중년 백인 여자를 옛날에 진료한 적이 있다. 심한 우울증과 염세주의가 주요 증상이었다. 아버지를 모르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가 전혀 공부를 안 하는 통에 근처 ‘community college, 공동대학(?)’에 갈 것이라고 그녀는 씁쓸히 말했다.
아들은 가끔 아버지가 누군지 궁금하다며 알아 볼 방법을 강구한다. 엄마는 당시에 워낙 많은 남자들이 있었고 다 뿔뿔이 헤어졌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모자(母子)는 좁은 아파트에서 별 의사소통(communication) 없이 무덤덤하게 살았다.
표정이 상냥했던 것 말고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그 환자 이야기를 하면서 ‘com-’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세 개나 들먹이는 나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뜸을 드리는 것일까. ‘com’이라는 라틴어 접두사가 지닌 ‘together, 함께, 같이'라는 의미에 신경이 예민해지기 때문이리라.
한자어로 ‘공(共)’! 실로 공포스러운 뉘앙스가 숨어있는 컨셉이다. 공산주의(共産主義)는 재산을 공유(共有)하려 하고 히피들은 남녀의 사랑을 여럿이 공유했던 것이다. 인간은 왜 남의 돈과 사랑을 공유하려고 덤벼드는가.
귀스타브 르봉(Gustave Le Bon, 1841~1931)은 파리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 복무를 마친 후 물리학, 고고학, 인류학을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1895년에 발간한 저서 ‘군중심리’로 정신과에 지대한 공헌을 끼친 재능이 부글거리는 프랑스인이었다.
그의 군중심리에 대한 뛰어난 저술을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를 위시하여 히틀러, 무솔리니 같은 독재자들이 애독했다 한다. 볼세비키 혁명을 일으켜 러시아 공산주의를 설립한 레닌(Lenin, 1870~1924)이 르봉의 군중심리 이론과 연계돼 있다는 보고도 있다.
르봉은 군중심리의 특징으로 개인의 정체성 상실을 첫 번째로 손꼽는다. 개인의 특성이 귀신처럼 사라지고 단체적인 감성과 행동이 난무하는 경지! 개인의 특수성이 부재하는 대신에 익명성(匿名性, anonymity)이 사람을 송두리째 지배한다.
두 번째 특징은 한 무리의 군중이 생겨난 후 그 단체요원들이 서로에게 끼치는 막강한 전염성(傳染性, contagion)이다. 독자적 생각을 하지 못하는 군중 마음 속으로 얼토당토아니한 슬로건이 전파력 강한 바이러스처럼 일파만파 퍼져간다.
세 번째는 암시성(暗示性, suggestibility)! 눈의 초점이 흐리멍덩한 사람들이 떼거지로 최면술에 걸린 듯 바보천치 같은 행동을 한다. 독재자들은 그런 현상을 호시탐탐 이용한다. 2022년 1월 28일 이후 2월 첫 주말에 걸쳐 넷플릭스 TV쇼 전세계 1위, 한국 좀비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처럼 좀비는 전체주의적 행동에 휩쓸린다.
이런 군중심리는 거리로 뛰쳐나온 군중들에게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입춘이 지난 겨울날 집안에 편안이 앉아 시시때때로 유튜브를 시청하고 취향에 맞는 인터넷 신문을 애독하는 사람들 마음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터지는 이벤트들이다.
© 서 량 2022.02.06
-- 뉴욕 중앙일보 2022년 2월 9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22/02/08/society/opinion/202202081721329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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