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하기를 싫어하는 병동환자들이 몇몇 있다. 이들은 몸을 오래동안 씻지 않는다. 어떤 때는 직원들이 덤벼들어 샤워장에 데리고 가 옷을 벗긴 후 물을 틀어줄 정도다.
그룹세션을 하는 중 ‘Cleanliness is next to godliness. - 청결하면 신(神) 옆에 간다’는 격언을 끄집어냈다. 매일 샤워를 하면 천국에 가느냐고 누가 비아냥거린다. 정작 샤워 안하기로 소문난 환자는 일부러 못들은 척한다.
만성질환 병동 간호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쓰는 전문용어로 ADL (Activities of Daily Living, 일상활동)이라는 말이 있다. ADL은 일상을 영위하는 기본적 기능 중에 먹기, 배설하기, 샤워 하기, 개인 위생, 옷 제대로 입기, 뜻대로 움직이기, 여섯 가지가 관건이다. 이중에서 사실상 샤워가 제일 중요하다.
예수님도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는 성경의 논증을 읽는다. 침례교, ‘Baptist Church’의 침례의식은 기독교인이 되기 위하여 죄를 씻는 과정이라 이른다. 힌두교인들이 속죄를 하기 위하여 갠지스강에 몸을 담근 채 기도하며 물을 끼얹는 습관도 같은 의미를 지닌 풍습이다. ‘baptize, 세례를 주다’의 어원은 전인도유럽어로 ‘담그다, 적시다’는 뜻. ‘잠길 浸’에는 가라앉는다는 의미도 있다. 침례교의 세례는 전신을 완전히 물에 담그는 침례(浸禮) 의식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큰 의식이 있을 때 목욕재계(沐浴齋戒)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不淨)을 탄다고 했다. 옛날 어려운 삶에 욕탕시설이 없던 시절, 평소에는 우물쭈물 지내다가 제사를 지내는 추석이나 음력 설이 가까이 오면 부랴부랴 대중탕에 가던 기억이 당신은 있지 않은가.
‘clean’은 씻어내다, 세척하다, 라는 동사 외에 순수한, 결백한, 같은 형용사로도 쓰인다. 전인도 유럽어의 말뿌리는 희미하게 빛나거나 환하게 반짝인다는 의미였다. 빛은 깨끗하기만 하다. 아무리 어둡고 더러운 물체를 비추더라도.
모짜르트의 현악5중주 ‘Eine Kleine Nachtmusik’을 직역하면 ‘작은 밤 음악’, 즉 소야곡(小夜曲)이다. 독일어로 ‘klein’은 작다는 뜻. 네덜란드어에도 같은 말이 있다. 유대계 성씨에 많은 ‘klein’과 ‘clean’은 발음이 거의 같다.
작은 것은 깨끗한 것이다. 반짝이는 샛별과 해변의 조약돌은 작고 깨끗하지만 거센 파도가 거듭 때리는 거대한 기암괴석은 더럽고 투박하다. 반짝이는 눈동자의 어린애들을 보라. 그들이 순수하고 청순하고 결백해 보이지 않은가.
부엌 캐비닛 서랍 속에 견과류 플라스틱 통이 여럿 있는데 서랍 바닥이 지저분하다. 휴대용 ‘cleaner’로 청소하는데 꽤 오래 걸렸다. 참 애썼다, 하는 생각과 더불어 “서량 군, 오늘 청소는 만점이요. 이제는 집에 돌아가도 좋소.”라 혼잣말을 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말이다. 학생 이름이 왠지 ‘영수’ 같다. 첫 페이지에 영이와 화려하게 등장했던 국어책의 주인공 철수가 분명 아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철저한 검사도 없이 왜 괜찮네! 하지 않고 만점이요! 하며 최고 점수를 주었을까.
영수가 좀 지쳐 보였을지도 몰라. 선생님 자신도 하루의 스트레스를 스스로 마감하려고 약간 서둘러 일과를 정리하려 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선생님의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영수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의 찬사와 위로는 바로 그 말이었다. “오늘 청소는 만점이요!”
© 서 량 2022.01.09
-- 뉴욕 중앙일보 2022년 1월 11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s://news.koreadaily.com/2022/01/11/society/opinion/202201111719268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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