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85. 봄

서 량 2021. 3. 22. 10:04

 

회의 시작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무료하게 앉아있던 직원이 올해는 3월 14일에 서머타임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시계 바늘을 앞으로 당기는지 뒤로 돌리는지 헷갈려, 하며 투덜댄다.

 

그거 ‘March forward, fall back, 3월은 앞으로, 가을은 뒤로’ 아니야? 하고 내가 말하자, ‘Spring forward, fall back, 봄은 앞으로, 가을은 뒤로!’ 하고 누가 잽싸게 교정해 준다. 3월에 시간을 바꾸자니까 그런 말이 튀어나왔나? 3월 대신에 행진(march)이라는 컨셉에 몰두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영어로 3월과 행진은 같은 단어다.

 

내가 그렇게 말한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근래에 입에 붙은 ‘move forward’라는 관용어가 나를 순간적으로 장악한 것이다. 회의 도중 토의가 지지부진해질 경우에 전에는 “Let’s move on, 움직입시다” 하던 부드러운 말습관이 이제는 “Moving forward, 회의를 진행하겠습니다” 하며 군대행진을 연상시키는 태도로 변한 것이다. 이 말이 요새 대유행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미간을 찌푸리며 자주 쓰는 말!

 

똑같은 동사 ‘move’ 다음에 진행을 뜻하는 ‘on’이 붙을 때와 행군을 암시하는 ‘forward’가 따르는 뉘앙스가 이토록 다르다는 사실에 유의하시라. 앞으로 가라는 말은 뒷걸음 치지 말라는 메시지다. 미래를 바라보며 과거에 억매이지 말라는 압력이다.

 

봄이다. 2021년 봄은 특별한 봄이다. 병동에서 내 환자들이 죽어 나가던 작년 봄이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직원들이 겁에 질린 자태로 출근하던 1년 전 봄. 올봄에는 SNS 지인들이 일제히 목청을 돋구어 봄을 환영하는 탄성이 터진다. 컴퓨터 모니터에 하루가 멀다 하고 봄꽃이 만발한다. 뉴욕주는 물론 전 미국이 백신을 맞는 안도와 기쁨에 숨을 고르고 있는 중!

 

봄, ‘spring’은 용수철이나 경칩이 지난 개구리처럼 휙, 또는 펄쩍 뛴다는 동사에서 유래한 말로서 14세기 말경에는 봄을 ‘springing time, 튀어 오르는 시간’이라 불렀다. 나중에 너무 잉잉대는 ‘스프링잉’이 ‘스프링’으로 변한 것이다. 이 말은 워낙 산스크리트어(梵語)로 열망한다는 뜻이었다. 봄은 열망의 계절이다. 모든 생명체들은 봄철을 틈타 소생과 부활을 열망한다.

 

입춘대길, 춘풍(春風), 춘정(春情), 같은 육중한 한자어를 멀리하고 싶은 봄이다. 봄바람이라도 살랑살랑 불어올 때 더 그렇다. 봄은 우리말 ‘보다(見)’가 명사로 변한 말이라 한다. (봄=seeing) 달래, 냉이, 꽃다지, 나물 캐는 봄 처녀 눈동자가 햇살을 머금고 반짝이는 봄날이다.

 

당신은 줄리어스 시저가 전쟁에 이긴 후 로마 시민들에게 보낸 승전보(勝戰報)의 명언을 기억할 것이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Veni, vidi, vici.” 그리고 당신은 시작과 결론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에 잠길 것이다. 전쟁터에 도달한 후 승리를 하기까지 일어난 일은 봄(seeing)이었다. 라틴어 ‘vidi(보았다)’의 현재형은 ‘video(보다)’. 우리가 즐겨보는 동영상, 바로 그 ‘비디오’다.

 

보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우리는 겨울을 이기는 기쁨으로 칙칙한 겨울의 흙먼지를 뚫고 승리의 전율에 몸을 맡기고 싶다. 고난을 뒤로하고 앞을 향하여 힘차게 걸어간다. 엊그제 춘분을 기하여 밤 시간을 낮 시간이 압도하기 시작하는 승리를 거두었다는 승전보를 손에 쥐고서.   

 

© 서 량 2021.03.21

-- 뉴욕 중앙일보 2021년 3월 24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9196355

 

 

[잠망경] 봄

회의 시작 시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무료하게 앉아있던 직원이 올해는 3월 14일에 서머타임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시곗바늘을 앞으로 당기는지 뒤로 돌리는지 헷갈려, 하며 투덜댄다. 그

www.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