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코넬 의과대학의 오토 컨버그(Otto Kernberg: 1928~) 밑에서 정신과 수련의 과정을 밟은 것은 내 직업 인생에 있어서 1970년대 중반에 터진 커다란 행운이었다. 현재 컨버그는 성격장애(Personality Disorder)의 진단과 치료 분야에서 세계 제일의 선구자로 손꼽힌다. 그는 우리 시대에 점차로 쇠잔하는 정신분석학에서 내가 존경하는 마지막 자이언트다.
체질적으로 언어에 지독한 관심을 품은 나는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약이나 수술보다 말을 사용하는 기법에 심하게 심취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던지는 질문이란 상대의 마음을 보듬어 파고드는 행위이면서 사람이 사람에게 심리적으로 도움이 되는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고도의 기술과 경험을 요구한다. 마음이 마음을 치료한다는 진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컨버그가 2012년에 출간한 책의 이상한 제목, "The Inseparable Nature of Love and Aggression. (사랑과 공격의 뗄 수 없는 본성)"에 주목하기를 바란다. 책 제목이 책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해서 알려주는 수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런 경우다. 평소에 그의 가르침을 낱낱이 살펴보는 나는 이 제목을 보는 순간 전신에 소름이 끼치면서 아, 이거다! 하는 깨달음이 있었다.
사람 마음은 여성적 속성과 남성적 기질이 늘 동시에 술렁인다. 사랑이 부드러움을 표방한다면 공격은 다분히 폭력적이다. 사랑이 출산과 육아의 모성본능이라면 공격은 가부장적 규율을 깼을 때 당신이 입술을 깨물며 달게 받는 징벌이다.
년 전 한국 TV 드라마에 "엄마가 뿔났다"가 있었다. 인터넷에 영어로 "Mom's dead upset."이라 번역해 놓은 것을 보고 킥킥 웃었다. 그 제목을 "Mom's horny."로 직역을 하고 싶은 짓궂은 충동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horny'는 남녀 구분 없이 성적(性的)으로 흥분했다는 뜻이고 이 표현은 음경이 짐승의 뿔처럼 딱딱해지는 흥분상태에서 유래한 말로서 컨버그의 사랑과 공격이 뗄래야 뗄 수 없는 본성을 가졌다는 진실을 매우 쌍스럽게 증명하고 있다. 뿔처럼 단단해진 수컷의 생식기는 사랑하는 이성의 핵심을 공격하고 싶다.
정신분석가 하인즈 코헛(Heinz Kohut: 1913~1981)은 시카고를 기반으로 뉴욕의 컨버그와 한때 성격장애 치료에 대한 논쟁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그는 성격장애 환자와 끊임없이 공감함으로써 환자 스스로가 마침내 해결점을 찾게 하는 방법을 강구했다.
코헛이 주창한 마음과 마음의 소통방식은 한쪽이 자기 마음을 거듭 죽이며 공감을 유지하는 동안 다른 쪽이 자발적으로 마음을 바꾸는 경지에 드는 방식을 취한다. 쉽게 말해서 그는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영원한 모성애를 축원했던 것이다.
나는 모질고 모진 사람의 성품이 애틋한 모성애 하나만으로는 절대로 성숙할 수 없다는 논리 때문에 때때로 환자와 대립한다. 험한 세상에 적응하는 험한 현실을 내세우며 엄격한 아버지 같은 태도를 취한다.
'aggress(공격하다)'는 1714년부터 쓰이기 시작한 'aggression'의 동사형. 이때 'a-'는 'alive', 'asleep', 'aware' 처럼 어떤 상황의 진행상태를 강조하는 용법이고 'gress'는 'progress(앞으로 나아가다, 진척하다)', 'congress(함께 나아가다, 국회)', 'egress(밖으로 나아가다)'에서처럼 걸어간다는 의미다.
컨버그 말이 백 번 맞다. 사랑과 공격을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다는 말은 쉬지 않고 걸어가는 사랑의 변동성을 암시한다. 그런 위험천만한 사태를 마다하지 않고 당신과 나는 서로를 사랑하려고 덤벼드는 것이다.
© 서 량 2016.06.12
-- 뉴욕중앙일보 2016년 6월 15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435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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