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13. 꿈에 대한 보충설명

서 량 2021. 4. 2. 16:26

 

당신이 내게 간밤에 꾼 꿈 이야기를 한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Interpretation of dreams, 1899년 출간)’이 가르쳐준 몇 가지 원칙을 추종하는 정신과의사로서 나는 좋은 음악에 심취하듯 당신 꿈의 내용에 몰입한다.

 

꿈의 내용에는 ‘드러난 내용(manifest content)’과 ‘감춰진 내용(latent content)’이 있다. ‘드러난 내용’은 거죽으로 나타나는 사실적 요소다. 당신은 꿈에 어느 버스 정거장 벤치에 홀로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저쪽에서 한 모르는 남자가 우산을 들고 당신 쪽으로 걸어온다. 방금 열거한 사실적 진술이 드러난 내용의 좋은 본보기다. 드러난 내용은 수박 겉핥기 식의 내용이다.  

 

당신의 행선지가 어디였는지, 그 정체불명의 우산 든 남자가 어떤 사람으로 느껴졌는지, 버스를 기다리는 기분이 어땠는지, 등등,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사연이 ‘감춰진 내용’이다. 감춰진 내용은 숨어있는 내막이다.

 

나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시간이 낮이었는가, 밤이었는가, 날씨는 어땠는지,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가. 당신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이내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에서 지적한 ‘이차적 보충설명(secondary elaboration)’을 한다. 

 

즉, 당신은 꿈 속에서 드러나거나 감춰진 내용이 아닌 부분을 앞뒤의 문맥에 걸맞게 조작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이때 당신의 ‘보충설명’은 엄밀히 말해서 거짓말이다. 우산을 든 남자가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 아니냐고 다그쳐 묻는 나에게 그가 나와 닮은 데가 있었다고 대답하는 친절한 거짓말을 하는 당신일 수도 있다.

 

꿈 속에서 주인공 역할을 하는 당신은 누구인가? 꿈에서 깨어나서 꿈을 기억하는 당신은 누구인가? 꿈 속의 당신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게 행동하는 광인(狂人)이지만 꿈을 기억하는 당신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가 말이다. 무의식의 수액(樹液)이 넘치는 꿈과 건조한 현실 사이를 혼령(魂靈)처럼 넘나들며 내게 보충설명을 하는 당신은 또 누구인가?

 

프랑스 정신분석가 라캉(1901~1981)은 무의식이 언어와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꾸는 비언어적(非言語的) 꿈속에서 언어가 꿈틀댄다. 라캉이 분석하는 욕망의 구조도 언어와 같은 무늬다. 당신의 끈덕진 시어(詩語) 또한 꿈이다. 

 

인간의 언어생활은 꿈의 구조를 그대로 따른다. 환자의 환상세계를 묘사하는 내 공식적인 발언도, 당신이 정성껏 쓰는 현대시도, 일간신문에 출몰하는 대문짝 만한 헤드라인도 죄다 무의식 속에 ‘감춰진 내용’의 춤사위다. 우리의 삶이 곧 꿈이다.

 

‘dream’은 고대 영어로 ‘기쁨, 시끄러운 소리, 음악’이라는 뜻이었다. 어원학자들은 ‘dream’이 왜 13세기 중엽이 돼서야 비로소 사람이 잠을 자는 사이에 경험하는 두뇌활동이라는 현대적 의미의 ‘꿈’이 됐는지 그 수수께끼를 아직 풀지 못하고 있다. ‘dream’에 ‘열망, 포부, 염원’이라는 뜻이 생겨난 것은 까마득한 세월이 흐른 후 1931년이었다.

 

당신 꿈의 후반부를 나는 이렇게 기억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도시와 거리에 강물이 유유히 흘러 넘치면서 보트 한 척이 당신 쪽으로 철석이며 떠내려 온다. 보트에 사람이 탔는지 아닌지 분명치 않다. 당신은 느닷없이 한 마리의 물새로 변신하여 칠흑 같은 창공으로 솟아오른다. 위기의식이 전혀 없는 이상한 기쁨으로 당신은 가슴이 설렌다.

 

그렇다. 꿈은 한편의 시다. 그리하여, 더더구나 꿈을 꾼 당사자도 아닌 내가 주제넘은 ‘보충설명’을 하다시피 꿈을 해석하는 순간 당신의 소중한 ‘감춰진 내용’은 송두리째 사라진다. 아니면 일그러진다.

 

© 서 량 2018.05.28

--- 뉴욕 중앙일보 2018년 5월 30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6241323

 

[잠망경] 꿈에 대한 보충설명

당신이 내게 간밤에 꾼 꿈 이야기를 한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Interpretation of dreams, 1899년 출간)'이 가르쳐준 몇가지 원칙을 추종하는 정신과의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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