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82. 알파 메일

서 량 2021. 2. 8. 11:42

 

눈 내리는 일요일 오후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원숭이에 대한 동영상을 보았다. 송곳니가 길게 뻗은 짧은 꼬리 원숭이(macaque monkey) 한 마리가 무리의 우두머리(the alpha)에게 왕위 찬탈을 위하여 사납게 덤벼든다.

 

무뢰한은 우두머리에게 패배하고 초라하게 추방당한다. ‘alpha monkey’는 수년간 관계를 다져온 충복들이 득달같이 달려와서 공격력을 과시해준 덕분으로 싸움에서 이긴다. 원숭이도 원맥(猿脈)이 좋아야 왕권이 유지되는 법이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당신과 나는 처음을 우선시하고 마지막을 피하려고 애쓴다. 그래서인지 ‘처음처럼’이라는 소주 이름이 꽤 호소력이 있다.

 

‘알파, alpha’는13세기에 히브리어와 희랍어에서 ‘시작’이라는 뜻이었는데 17세기에 ‘첫 번, 으뜸’이라는 의미가 덧붙여졌다. 1960년경 동물사회학 학자들이 ‘alpha male’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고 1992년에 이 말이 사람에게 처음 적용됐다. 알파 메일이 일상어가 된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불과 19년 전이다. 네이버는 이 말을 ‘우두머리 수컷’이라 풀이한다.

 

리차드가 다른 병동에서 보조간호사를 두들겨 패고 나서 내 병동으로 후송온지 벌써 수 개월 째다. 첫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신적 문제가 무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대뜸 나오는 대답이 자기가 알파 메일이기 때문에 심적인 고통을 받아왔다는 것! 걸핏하면 남들을 때리는 못된 버릇이 치료의 포커스가 될 것이라고 나는 못을 박는다. 도끼 눈을 뜨고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판에 박힌 알파 메일 수법을 쓰는 리차드!

 

그랬던 그가 며칠 전 저보다 10여년 젊은 놈에게 얻어맞고 코피를 많이 흘렸다. 다음날 자기는 더 이상 알파 메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풀이 많이 죽었다. 젊은 놈이 먼저 시비를 걸었고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병동이라는 소규모 무리생활에서 사사건건 우두머리 행세를 하며 껍적대는 그의 작태가 꽤나 눈꼴사나웠을 것이다. 리차드는 편을 들어주는 충복이 없어서 왕좌를 빼앗긴 셈이다. 그는 위세 등등한 당원(黨員)도 아니었다. 지금 현재의 알파 메일은 그를 단숨에 때려눕힌 체격 좋은 젊은 놈이다.

 

최초로 ‘알파 메일’이라는 용어를 쓴 사람은 스위스의 동물 행동학 학자, 루돌프 쉔켈(Rudolf Schenkel)이었다. 그는 오랜 동안 늑대의 무리생활을 세밀하게 관찰한 후 1947년 논문에서 늑대 사회의 알파 메일, 알파 피메일(alpha female), 베타 늑대라는 신조어를 사용했다. 가장 힘 없고 빽 없는 승냥이는 오메가 늑대라 명명했다. 베타는 알파를 도와주는 보조역할을 한다. 알파는 주연, 베타는 조연. 유사시에는 베타가 알파 역할을 하는 경우가 인간 사회의 정치구조와 아주 흡사하다. 툭하면 화풀이를 당하는 희생양(?) 오메가의 처지 또한 그렇다.

 

찰스 다윈 말 대로 원숭이는 인류의 선조뻘이라서 그렇다 치더라도 늑대의 단체생활을 우리 사회현상에 적용시키는 것은 어딘지 좀 거시기하다. 그러나 동물왕국의 수컷들은 종족보존 본능에 입각하여 자신의 씨앗을 살파하려는 경쟁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는 사생결단의 투쟁에 들어서는 것이 사실이다. 파도치는 해변에서 터지는 물개 수컷들의 목숨을 건 몸싸움을 보라.

 

생각해 보면 알파 피메일도 마찬가지다. 나무도 꽃도, 존재하는 온 생명체들은 연연세세 올림픽 경기에 참전하는 용맹무쌍한 운동선수들이다.

 

© 서 량 2021.02.07

-- 뉴욕 중앙일보 2021년 2월 10일 서량의 고정 칼럼 <잠망경>에 게재

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9081894

 

[잠망경] 알파 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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