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앙일보 컬럼, 잠망경

|컬럼| 368. Medicine Man

서 량 2020. 7. 27. 09:18

 

피터가 말도 안되는 말을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다가 건강을 회복한 27살의 옆방 환자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한 후, 낮잠을 자고 있는 그를 자기가 목 졸라 죽였다고 간호사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한 것이다.

 

왜 그런 말을 했냐고 물어본다. 그는 변호사 충고대로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선포한다. 그리고 경찰이 언제 병동에 와서 저를 체포할 것이냐고 묻는다. 참, 너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꼭 감옥으로 후송 가겠다고 여러 번 말했지, 이 병동에 있기가 싫어서? 하며 나는 대꾸한다. 그는 나를 노려보기만 하고 대답이 없다.

 

환자가 ‘confabulation’을 했다는 보고서를 썼다. 단정적 진술이다. 이 말은 담소, 잡담, 수다를 좀 격식 있게 뜻하지만 정신의학에서는 작화(作話)라 지칭한다. 지을 作, 말씀 話, 소설이나 시처럼 만들어진 말. ‘fable (우화, 꾸며낸 이야기)’도 ‘confabulation’과 말뿌리가 같다. ‘거짓말’이라 해도 좋은 경우를 ‘작화’라 하는 이상한 어법에 일반인들은 머리를 조아리는 법! 전문용어는 일상용어를 멀리한다.

 

공상허언증(空想虛言症, pseudologia fantastica)도 작화증(作話症)과 뜻을 공유한다. 이 두 증세는 어디까지나 무의식의 소산이라고 친절한 해석을 내리는 정신과 의사들도 있지만 대개 ‘pathological lying, 병적허언(病的虛言)’이라 어렵게 말한다. 마치 무슨 엄숙한 고사성어처럼 들린다. 나는 ‘걷잡을 수 없는 거짓말’이라 옮기고 싶지만.

 

정신과에서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때에 따라서 환자가 자기는 병이라고 설득력 있게 우기기도 한다. 사회풍조가 전통적 진단명을 거부하기도 하고 병이 아닌 상태를 병으로 규정하는 일이 예사다. 오래 전 정신질환이라 불리던 동성애가 이제는 정상이 된 것이 그 좋은 예다. 반면에 올데갈데없는 범죄자들이 정신과 환자라는 허울을 쓰고 내 병동 환자가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당신과 나같은 소시민들도 정신과 환자가 되고 싶은 유혹을 받는 수가 있다. 오래 지속되는 어두운 마음을 약으로 다스리고 싶다. 좌절감이 심할 때 습관적으로 술을 마셔서 유연해지고 싶은 심정과 비슷하다. 불행한 환경과 상황이 어찌 정신질환이라는 말인가. 

 

요사이는 불편한 감정상태에 진단명이 붙는다. 어떤 이유에서 마음이 어둡거나 울화가 치밀 때 우울증이 있다고 자가 진단을 붙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medicalization, 의료화(醫療化)’라 일컫는다. 당신 마음을 의사가 책임졌으면 좋겠다고?

 

환자 아버지가 나를 “chemistry man”이라 부르길래 내가 “mental man”이라고 삐딱하게 응수한 적이 있다. 그때 ‘medicine man’이라고 농담을 할 걸 그랬다. 전인도 유럽어에서 ‘medicine’은 ‘적절한 방침을 취하다’라는 뜻이었다. 암, 의사가 환자 가족에게 하는 농담도 적절한 방침이 될 수 있지. ‘Medical Doctor’나 ‘medicine man’이 뭐가 그리 다르냐. 참고로, ‘medicine’은 14세기에 ‘약’이라는 뜻이 주류를 이루었다. 요즈음도 그렇다.

 

‘medicine man’은 아메리칸 인디언의 민속신앙에 뿌리박은 초능력을 가진 주술사, 또는 다른 전통문화의 ‘무당’을 뜻한다. 2020년에 코로나 환자를 상대하다가 거짓말을 일삼는 피터 같은 환자 마음을 얼른 알아차리는 초능력이 생긴 것 같다. 나는 이제 무당이다.

 

© 서 량 2020.07.26

--- 뉴욕 중앙일보 2020년 7월 29일 서량 칼럼 <잠망경>에 게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8514347

 

[잠망경] Medicine Man

피터가 말도 안되는 말을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다가 건강을 회복한 27살의 옆방 환자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한 후, 낮잠을 자고 있는 그를 자기가 목 졸라 죽였다고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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